상봉 무산된 이산가족들 선물 챙기다 한숨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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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젯밤 꿈 속에 북한에 있는 딸 아이가 강물에 떠내려 가더라구…. 설마했는데…."

오는 16일부터 18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딸 오필순(56)씨를 만나기로 돼 있던 남측의 아버지 오정동(77.경기도 부천시)씨는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오씨는 딸에게 주려고 준비한 금반지.내의 등 선물꾸러미를 초점잃은 눈길로 바라보다 끝내 주루룩 눈물을 흘렸다.

제4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이 불과 나흘 앞두고 무산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12일 상봉의 순간을 애타게 기다려온 이산가족들은 깊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여동생 강꽃분(72)씨 등 동생 5명을 만나러 평양으로 갈 예정이었던 강일창(75.서울 노원구)씨는 "상봉을 눈앞에 두고 이게 무슨 일이냐"며 "오히려 포기하고 살 때보다 더 견디기 힘들다"고 허탈한 모습이었다.

북한에서 내려오는 형 김성하(74.전 김일성대 교수)씨를 서울에서 만날 예정이었던 김민하(金玟河.68)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의 가족들은 "이산가족들이 만나기가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다"며 "또 얼마를 기다려야 될지 몰라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적십자사에는 이날 하루종일 일정 보류 이유 등을 묻는 이산가족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적십자사는 북한방문단에 포함된 지방 거주 이산가족들이 미리 서울로 올라왔다가 허탕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이날 일일이 방문보류 사실을 통보하느라 분주했다.

적십자사 총재 특별보좌역 이병웅(李柄雄)씨는 "깊은 허탈감을 느낄 이산가족들에게 매우 송구스럽다"며 "북한측에 즉각 방문단 교환을 재개할 것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손민호.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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