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섬 실향민들의 귀향… 94년 이후 5번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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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그때는 대문이 아예 없었지. 여름에는 고기 잡아서 회 쳐 먹고 겨울엔 얼음을 지치고…. 한강물을 그냥 퍼서 먹었다니까."

"장마철에 강물이 불면 나룻배가 다닐 수 없어 학교를 못 갔기 때문에 은근히 비를 기다렸지."

12일 오전 11시 한강시민공원 망원지구 선착장. 한강 밤섬에 살다 1968년 여의도 개발에 쓸 골재 채취를 위해 섬이 폭파되면서 뭍으로 건너왔던 '밤섬 실향민' 가운데 2백여명이 모여 고향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94년 첫 방문 이후 그동안 네차례나 다녀왔지만 설렘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무심한 세월 탓일까. 황포돛배와 바지선에 나눠 타고 20여분만에 도착한 섬에서 이들을 맞은 것은 서강대교의 회색빛 교각과 이름 모를 풀들뿐이었다.

그래도 실향민들의 마음만은 고향집에 온 것이나 다름없다. 유정임(72.여.마포구 창전동)씨는 "이렇게라도 왔다 가면 마음이 푸근해진다"고 말했다. 섬에서 배 만드는 일을 했던 김성영(76.마포구 창전동)씨는 "배가 물에 뜨는 날은 온 마을의 잔칫날이었다"고 추억을 더듬었다.

실향민들은 준비한 음식으로 제삿상을 차리고 '밤섬 고향신'에게 귀향제를 올렸다. 고향 땅 바로 건너편에서 열리는 내년 월드컵의 성공을 기원하는 축문도 띄웠다.

서울에서 나서 서울에 살지만 실향민이 된 이들의 삶만큼이나 밤섬의 운명도 기구하다.

그 생김새가 밤알을 닮았다 해서 '율도(栗島)'라고 불리던 밤섬은 마포나루와 가까워 조선시대부터 조선업이 번창했던 곳. 그러나 68년 폭파로 섬에 거주하던 62가구 4백43명의 주민들 대부분은 마포구 창전동 일대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80년대말 한강 개발로 둔치가 모두 콘크리트 제방으로 변하면서 갈대가 무성했던 밤섬은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99년에는 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제사를 마친 주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막내격인 인명용(50.마포구 망원동)씨는 "어르신들이 많이 돌아가셔서 갈수록 참여하는 주민들이 줄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날 오후 1시40분 실향민들을 태운 배는 밤섬을 떠났지만 망원 선착장에 닿을 때까지 주민들의 눈길은 밤섬을 떠나지 않았다.

김영훈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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