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예술가로 산다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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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사람들=산다는 일에 조금은 지쳤거나 왠지 심드렁해진 사람들이라면 『예술가로 산다는 것』을 읽어둘 필요가 있을 듯 싶다.

저자의 말대로 지독한 가난과 궁핍을 자청해 '소신(燒身)공양하듯' 미술행위에 매달리고 있는 이 시대의 미술가 열명의 삶은 그토록 절실하게 묘사된다. 이 책을 읽어둘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이밖에도 적지않을 게다.

시멘트 벽에 갇혀 사는 도회지 사람들, 그래서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다고 간혹 느끼는 이들은 당연히 이 책을 선택할 만하다.

때론 필요 이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물기 그득한 서정적인 톤이지만, 문인(文人) 못지않게 아름답고, 더없이 진지한 문장에 담긴 저자의 안목은 요즘 시대에 만나기 쉽지않다.

▶이 책을 굳이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오늘날 그림 그리는 일은 수완좋고 인맥과 학연의 끈을 활용해야 하는 비즈니스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책의 곳곳에서 말한다. 따라서 사는 일에 충분히 밝거나 이런 정신없는 세상과의 불화(不和)를 겪어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굳이 이 책을 들춰볼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아니다. 그런 분들이야 말로 이 책을 한번 접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내부에 간직된 잠재적인 욕구를 한번쯤 보듬어보고 싶다면 말이다.

"은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작가들은 몇 평에 불과한 자신의 작업실과 세상을 경계짓고, 그 벼랑에서 그림을 그린다. 가족과도 떨어져 스스로 밥을 지어먹으며 그림을 그린다. 일종의 수행이자 봉양이다."(1백42쪽)

"어렵게 구한 오지의 자신만의 공간에서 고독과 궁핍, 작업에의 막연한 기대를 안고 살아가는 작가들에게는 그곳에서의 버팀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들의 작업은 결코 낭만적이거나 화려하지 않다"(19쪽)

국내 화단의 현장에 가장 밝은 사람 중의 하나인 경기대 교수 박영택(39.전 금호미술관 큐레이터)은 세속적 명성과는 담을 쌓은 작가들을 찾아나선다. 한두 번 만난 뒤 쓴 글이 아니라 10년 넘는 교유를 포함해 오랜 만남과 이해의 흔적이 역력한 글들에 담긴 사람들은 거의 무명작가들이다.

이를 테면 제도권 미술에 대한 미련을 끊고 독학으로 경주의 오지에서 작업을 하는 김근태의 작업실은 "절박과 극한이 몸을 섞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청주의 한 초등학교 빈교실에서 꼬박 그림만 그리고 사는 김명숙의 그림에 대한 설명과 '절대고독의 삶'은 책 읽는 이의 마음을 전율케 한다.

과장이 아니다. 이밖에 김을.청도.박정애.박종문.염성순.정일랑.최옥영.정동식씨 등의 작업실 탐방 역시 비슷한 톤으로 묘사된다. 책에 곁들여진 사진작가 김홍희씨의 사진 역시 이들의 처절한 삶이 한눈에 들어오는 좋은 작품들이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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