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남미가 꼭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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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정치인과 기업인 사이의 유착은 심각한 수준이고, 정치인들은 신뢰도가 바닥이다. 정치를 재건하려면 여러 세대가 지나야 가능할 것이다."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에서도 사회 각 집단들은 기득권을 양보하지 않으려 하고 있어, 개혁정책은 표류를 거듭한다."

"지도자들의 인기영합 정책이 나라를 절망적 국면으로 이끌고 있고, 젊은이들은 이민을 가든지 침묵하며 살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발췌해 본 인용문 몇 개는 꼭 한국사회에 대한 지적으로 들릴 것이다. 신간 『남미가 꼭 보인다』가 의도하는 바도 그런 쪽이 아닐까 싶다.

리더십은 바닥을 치고 있고, 사회개혁은 비틀거리는 남미의 국가들을 통해 '유사(類似)남미국가 한국사회'를 들여다 보자는 것이다. 제2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배제 못하는 등 '위기 다발형 사회'로 전락할 위험을 가진 한국사회를 위한 성찰의 자리 제공 말이다.

▶남미.한국, 닮은 점과 다른 요소=물론 책에서 언급되듯 한국사회와 남미는 다르다. 역사적 경험이 현저하게 구분되고, 사회적 연대감과 개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한국사회의 희망으로 남아있다. 사회 통합력의 측면도 한국은 남미사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16세기 이후 스페인 정복국가로 형성된 뒤 19세기 이후 유럽인들이 돈벌러 정착한 땅'인 이민국가 아르헨티나의 경우 한국 고유의 애국심은 부러움의 대상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현상의 측면은 너무도 닮은꼴이라는 게 이 책의 시각이다. 특히 독버섯 처럼 자리를 잡아가는 '유사(類似)남미증후군'은 무시할 수 없다. 보자. 장기적인 비전이나 전략이 의심스러운 남미와 한국의 지도자들, 당리당략에 발 묶인 정치인들, 집단 이기주의에 빠진 사회가 그것이다.

▶발품 판 흔적이 역력하다=이 책의 장점은 이런 분석을 추상적 이론으로 전개하지 않는 점이다. 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베네수엘라.페루.멕시코 등 6개 국가별로 나눠 서술하되, 각 국가에 대한 분석도 5~6개 주제로 나눠 일목요연하게 다룬다.

이 점이 자칫 산만하게 비춰질 순 있으나 읽는 맛도 무시 못한다. 해당 주제별로 최소한 1개씩의 관련인사 인터뷰를 채운 것도 싱싱한 현장감으로 연결된다.

인터뷰 대상은 후지모리의 라이벌로 첫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 된 페루의 알레한드로 톨레도 대통령을 비롯해 노조 지도자, 언론인, 사회과학자, 피노체트의 최측근인사, 변호사 등 31명이나 된다.

이런 취재활동은 남미의 현지 외교관들의 조력 아래 이뤄졌고, 대외정책연구원 연구위원(김원호)과 신문기자(이미숙) 사이의 역할 분담 속에서 가능했다.

다소 어설픈 제목을 단 『남미가 확 보인다』이지만, 이 책이 서점의 빈약한 남미관련서를 풍부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판단은 그 때문이다.

▶결국 정치 리더십이 문제다=책에 보이는 '반면교사 남미'의 모습을 모자이크 해보자면 이렇다. 아르헨티나의 메넴 정부는 대처리즘에 입각한 정책으로 공격적인 경영합리화, 노동시장 유연화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 빈혈상태에 빠져 '팔려고 해도 팔 것이 남아나지 않았고', 정부는 도로 통행료마저 외국기업 논리를 따라가야할 판이다. 지난 여름 이 나라가 다시 채무지급 불능상태에 빠진 것도 예견된 자가당착이다.

그러나 남미에서 배울 것은 반면교사 측면만은 아니다.

'심각한 경제위기'와 '기적의 극복' 사이를 왔다갔다해온 멕시코야말로 한국사회와 닮은꼴이 아닌가 싶다. 그 멕시코에서 배울 것은 에르네스트 세디오 전 대통령의 '뚝심'이다.

그는 경제위기의 악순환을 벗기 위해 인기에 영합하는 무리한 경기부양 대신 정치개혁에 발을 디뎠고, 대대적인 금융산업 재편을 주도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

칠레의 경우도 괄목할 만하다. 군부독재의 후유증으로 군부보수층이 똬리를 틀고 있으나, 칠레 정부는 비전을 가지고 칠레의 남미병을 부분적으로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남미사회를 다룬 이 책이 이 땅의 '리더십에 대한 대망론'으로 읽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조우석 기자

*** 南美病의 원인

책은 현상을 기술하는 데 일단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론'을 거듭 환기하는 처방을 내리고 있어 주목된다. 어차피 시장경제 이외에 뽀족한 대안은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시장의 야만성'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조정능력은 충분하게 발휘돼야 한다는 논리다.

이 대목은 산술적인 절충주의가 아닌가 하는 혐의를 받을 수도 있지만, 특히 정치사회 엘리트들의 비전을 강조하는 대목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유엔의 중남미경제위원회가 펴낸 '1999~2000 중남미 사회보고서' 역시 국가의 역할이 극대화돼야 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있음을 이 책은 환기시킨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문제는 역시 리더십의 질이다.

80년대 이후 중남미 국가들이 구사해온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는 역량을 가진 정치인들의 조정능력 부재와 그것의 중요성을 새삼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국.싱가포르 등 동아시아적 모델에 관심을 갖고 기웃거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책에 보이는 '한국사회=유사 남미증후군'는 실은 다소 과장인지도 모른다. 중남미 총인구의 45%에 달하는 2억2천만명의 인구가 극빈층을 형성하고 있고, 여기에 성장을 하면 할수록 빈부격차가 커지는 현상은 '남미병'만의 현상이다.

우리의 경우 이런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점, 따라서 비전을 가진 지도자들의 헌신과 처방이 효율적으로 곁들여진다면 한국사회는 충분한 희망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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