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의 신중국 경제 대장정] 10. 후안강 교수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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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국 경제의 비약적인 성장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런 고속 성장을 낳은 중국의 경제체제도 주목거리다. 심지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사회주의의 간판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정책 결정과 학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후안강(胡鞍鋼) 칭화(淸華)대 공공관리학원 교수를 만나 중국 고도성장의 현주소와 체제개혁, 그리고 미래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정운영:바쁘신 중에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한 중국 경제의 중기 발전 전망을 듣고 싶습니다.

후안강:최근 10년간 중국은 10%대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금후에도 7~8%는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농촌에서 도시로 대거 이동하는 인구가 있고, 둘째 국내 저축과 투자가 고속 성장을 뒷받침할 것입니다. 셋째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기술 운용 국가'인데, 그것이 개혁의 잠재력을 자극할 것입니다.

鄭:중국은 사회주의 초급 단계의 목표를 완료했습니까?

胡:아직 완료하지는 못했지만, 완성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하나의 중국에는 네개의 세계, 네개의 사회가 있습니다. 제1세계는 고소득 국가 수준에 도달한 인구 2%를 가리킵니다. 제2세계는 상.중등 수입을 올리는 20%, 제3세계는 하등 수입 22%의 인구입니다. 그리고 제4세계에서는 50%가 넘는 인구가 최저 수입으로 살고 있습니다.

鄭:네개의 사회란 무엇입니까?

胡:노동력 비율에 따라 인구의 50%를 차지하는 농업 사회, 22%인 공업 사회, 23%의 전통적 서비스업, 5%의 지식 사회로 구성됩니다. 중국은 이렇게 복잡한 사회와 세계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9백60만㎢를 다 돌지 않고는 중국이란 나라를 알기 어렵습니다.

鄭:마오쩌둥(毛澤東)의 경제 정책은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胡:1950년대에 毛는 15년 안에 영국을 따라잡는다는 대약진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완전 실패는 아니었지만 1천5백만~2천만명이 희생됐습니다. 덩샤오핑(鄧小平) 시대는 중공업 우선과 자력 갱생에서 개혁.개방으로 전환해 비교적 성공했어요.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개혁.개방 전인 75년의 2.8%에서 지금은 10.7%로 늘어났지요. 미국과의 차이도 부단히 작아지고 있어요. 빠른 발전에는 빈부나 부패 등 후과(後果)가 따르게 마련이지요.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것 같아요.(웃음)

鄭:鄧 노선이 성공한 주요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胡:毛는 시인이라 낭만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이었죠. 반면 鄧은 철저히 현실주의자였습니다. 한국과 싱가포르 등 주변 국가의 발전상을 보고 과감하게 대외 개방을 실시했습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개혁은 했지만 개방은 별로 없었습니다. 鄧이 주동적으로 개방을 서둘렀으며, 급속한 발전은 개방의 덕입니다. 국민 경제에서 시장 기제의 영역을 나타내는 '시장화 지수'가 75년의 25%에서 지금은 80%로 상승했습니다.

鄭: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기존의 사회주의와 어떻게 다릅니까?

胡:제일 큰 차이는 계획경제를 버리고 시장경제를 택한 것입니다. 자급 자족과 자력 갱생을 버리고 대외 개방과 글로벌 경제에 참가한 것이지요.

鄭:자본주의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胡:목표가 다릅니다. 중국은 공동 부유를 추구하지만, 미국은 매우 부유해도 흑인 문제 같은 고민이 있지 않습니까? 미국은 빈곤.범죄.밀수.마약 따위의 사회 문제를 1백여 년간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어요. 중국은 발전 과정에서 이런 문제를 미리 회피합니다.

鄭:미국 얘기를 하셨는데 중국도 빈부 격차가 커지고 있지 않습니까?

胡:사실입니다. 여러 정책을 실행했는데 그 성과가 크지 않습니다.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빈부 차이가 심하면 안정을 담보할 수 없어요. 중국에 네개의 세계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여러분이 이번 취재 기간에 제1세계와 제2세계만 보지 않았을까 해서 걱정입니다. 중국은 제4세계에 속한 사람이 7억~8억명이나 됩니다.

鄭:중국이 자본주의로 가더라도 누가 말리지 않습니다. 사실은 자본주의로 가면서 줄곧 사회주의를 쳐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胡:주룽지(朱鎔基)와 장쩌민(江澤民)에게 물어보시죠.(웃음) 자본주의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그것이 다르고, 70년대와 80년대의 유형이 다른데 어떤 자본주의 말입니까?

鄭:중국이 지금처럼 가면 미국과 다를 것이 없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胡:사실 어려운 문제입니다. 세계은행 발표에 따르면 중국의 소득 불평등 정도는 미국과 비슷하더군요. 이 지표대로라면 중국은 미국의 길을 걷는 셈입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과 대만은 비교적 평등해 보이는데요.

鄭:말씀은 반가우나 한국도 불평등 문제가 심각합니다.

胡:제 눈에는 한국이 사회주의 국가 같습니다. 불평등 정도가 중국보다 적어 보이거든요.(웃음)

鄭:그 말씀만으로도 큰일납니다. 실업 문제에는 어떤 대책이 있습니까?

胡:학계를 비롯한 민간에서는 실업자를 1천6백만명 정도로 보고 있으나, 정부는 6백만명 이하라고 주장합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실업자는 더욱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중국은 올해 시작한 10차 5개년계획-10.5계획-에 8천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기로 했어요. 정부는 또 농민이 도시로 들어와 일할 수 있도록 탄력적이고 비정규적인 서비스업을 신속히 발전시킬 방침입니다. 고용 창출 문제는 중국 정부의 가장 다급한 과제입니다.

鄭:부패 방지에 무슨 희망이 보입니까?

胡:먼저 정치 영도들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반부패 종합 대책을 제정해야 합니다. 정부 기능도 바꿔 너무 간섭하지 말고, 정부와 기업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행정 업체'는 그 기능을 분리해야 하겠지요. 국제적인 반부패.반뇌물 기구와의 연대도 필요합니다.

鄭:외자가 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을 위험은 없습니까?

胡:외자는 공업 생산의 20%, 수출액의 45%를 차지합니다. 반면 납세는 전체 세입의 10%도 안 되고, 고용 비중도 3~5% 정도로 매우 낮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외자가 성장의 발동기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세계 5백대 기업 가운데 이미 2백개가 들어왔어요. 외국인 투자 유치의 1위는 미국이지만,2위가 중국입니다.

鄭:거기 혹시 부정적 측면은 없나요?

胡:산업 재해와 노사 분규가 많이 일어나는 것은 문제입니다.

鄭:중국이 언제쯤 미국 경제와 맞설 수 있다고 예상하십니까?

胡:우리는 미국과 싸울 생각이 없어요.

鄭:싸운다는 뜻이 아니라 실력이 비슷해지는 시점 말입니다.

胡:20년쯤이면 되겠지요. 80년대 말에 우리 농산물이 미국을 추월했어요. 90년대 말에는 자동차와 전력 외에는 미국보다 앞섰고, 올 7월 현재 이동전화가 미국을 이겼어요. 정보기술(IT)과 컴퓨터는 5년 이내에 따라잡을 것입니다. 어느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하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추월할 수 없는지가 우리의 관심사입니다. 그러나 원자탄만은 미국을 추월하지 못할 겁니다.(웃음)

鄭:WTO 가입으로 중국이 보는 이익과 손해는 무엇입니까?

胡:농민이 가장 큰 피해자일 것 같습니다. 미국의 농민은 1인당 경작지가 중국의 1백배,1인당 수출액이 중국의 3백~4백배에 이릅니다. 이것을 어떻게 당합니까?

鄭:중국은 미국 때문에 피해를 본다지만, 한국은 중국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는데요.

胡:중국은 농업 인구가 50%를 넘지만 보조금은 정부 예산의 10%도 안 됩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농업 지원은 이보다 훨씬 많습니다.

鄭:한국 농민도 WTO 압력 아래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胡:그래도 한국 농민은 시위라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웃음)

鄭:앞으로 개혁.개방 정책이 방향을 바꿀 가능성은 없습니까?

胡:개혁.개방은 대세입니다. 다만 그 방법에는 논쟁이 따를 것입니다. 누가 이익이고 누가 손해냐는 문제가 대두되면 손해를 보는 측에서 반대하고 나설 것입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좌우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수의 빈곤한 사람을 대표하느냐 소수의 부유한 사람을 대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도시에서는 8%의 실업자를 92%의 취업자가 돌보고 있지 않습니까?

鄭:개혁과 개방은 다수를 위한 정책이라고 보십니까?

胡:개혁.개방에는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두 개의 축이 있습니다. 중국이라는 거인(巨人)은 어느 한 다리로 걸을 수가 없습니다. 사회주의와 시장경제의 두 발로 걸어야 합니다. 毛가 1백% 이상주의자라면 鄧은 1백% 현실주의자였어요. 저는 60% 현실주의자에 40% 이상주의자입니다. 이것이 중국의 새 세대(新一代)가 가진 보편적인 사고입니다. 이들은 毛에 완전히 반대하지도 않고 鄧에게 완전히 동의하지도 않습니다. 마땅히 毛도 있고, 鄧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應該有毛有鄧).

鄭:취재 기간에 만난 중국인들은 90%의 현실주의와 10%의 이상주의를 따르는 것 같던데요.(웃음) 한국 경제의 장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胡:과도하게 미국 시장에 의존하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미국 경제가 세계 제일인 것은 사실이지만 불시에 문제가 터지면 주변 국가들이 큰일납니다.

그러니 계란을 불 속에 던져서는 안 됩니다. 한국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미래의 가장 큰 시장이 있습니다. 천시(天時).지리(地利).인화(人和)를 고루 갖추고 있는데, 왜 가까운 곳을 버리고 먼 곳만 바라봅니까?

단기적으로 한국 경제는 미국의 영향 아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 경제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한국에는 이익 집단이 많아 개혁 속도가 늦어 보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보다 빠른 속도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개혁하고 여러분이 개혁하지 않으면 거룡(巨龍)이 언젠가는 추월할 것입니다.

鄭:이미 추월한 것 같은데요.

胡:일부 영역에서만 그럴 것입니다.

정리:장세정 기자

*** 후안강 교수는…

▶1953년 랴오닝성 안산(鞍山)출생

▶82년 2월 탕산(唐山)공학원 야금압력가공 전업(專業)본과,공학 학사

▶84년 12월 베이징 과기(科技)대학 압력가공과,공학 석사

▶88년 9월 중국과학원 자동화연구소,공학 박사

▶91년 9월∼92년 9월 미국 예일대 경제학과 박사후 과정

▶93년 중국 과학원 연구원 40세때 파격 발탁

▶96년∼현재 중국 최고의 명문 칭화(淸華)대학 21세기 발전연구원 교수

▶97년 9월∼98년 1월 미 MIT 국제연구센터 객원연구원

▶98년 5월∼98년 6월 홍콩중문대학 경제학과 객원 연구원

▶99년∼현재 중국 과학원 국정연구중심 주임(소장)

▶2000년 11월∼2001년 1월 일본 게이오(慶應)대학 공공관리학원 방문교수

▶‘중국국가능력보고’ 집필(94년),‘중국국정분석’ 출간(97년),중국 고위층에 중국의 현실 문제와 개혁적 미래 비전을 비판적으로 전달하는 소신파 학자

사진=조용철 기자

▶대담ː후안강(胡鞍鋼) 칭화(淸華)대학 공공관리학원 교수

정운영(鄭雲暎) 중앙일보 논설위원

▶일시ː2001년 9월 5일 오후 4시∼6시

▶장소ː베이징(北京) 칭화대학 공공관리학원 532호 회의실

▶정리ː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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