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자지라 TV 또 하나의 전쟁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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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탈레반과 미국.영국은 언론을 놓고도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현재 이들이 벌이고 있는 미디어 전쟁의 주무대는 카타르에서 방송하는 아랍어 위성방송 알 자지라.이미 오사마 빈 라덴 등 테러주역들과 아프가니스탄 지도자들의 독점 인터뷰 등을 방영한 알 자지라는 8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녹화 인터뷰를 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9일 백악관 관계자의 발언을 통해 알 자지라측의 회견 요청이 있으면 그 수용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알 자지라는 이제 국제정치의 주요한 무대로 등장했다.

이는 서구언론을 불신하는 빈 라덴 및 탈레반 정권의 교묘한 언론전술과, 아랍인들에게 공격의 정당성을 선전해야 하는 미.영측의 필요가 겹쳐진 때문이다. 블레어 영국 총리는 8일 알 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영국은 이슬람과 전쟁하는 게 아니다. 계속해서 재앙을 일으킬 집단(빈 라덴 등 테러리스트들)과 부득이 싸우고 있을 뿐"이라 주장했다.

알 자지라의 아랍인 시청자는 1억명이 넘는다. 주적(主敵)이 아랍인들이 아니라 극소수 테러리스트임을 아랍인들에게 직접 호소해야 하는 미.영 정상들로서는 이보다 효과적인 발언대는 없는 셈이다.

알 자지라로서는 서구 정상들과의 독점 인터뷰를 내보냄으로써 그동안 '빈 라덴과 탈레반 정권의 입'이란 지적을 받아온 일부의 비난을 잠재우고 전쟁의 쌍방 주역이 모두 발언대로 삼는 중요 매체로 떠올랐다. CNN 등 서구언론이 독점적 지위를 누렸던 걸프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인 것이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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