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단병호위원장 '선처약속' 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민주노총 단병호(段炳浩)위원장의 재수감을 둘러싸고 민주노총과 천주교측이 약속 위반이라고 정부를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규탄 농성과 집회를 통해 정권과의 전면전도 불사하겠다고 나서 노-정 관계에 먹구름이 드리워진 상태다.

또 정부와 段위원장 사이에서 중재를 맡았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비롯한 천주교대책위원회측도 "김대중 정권 회개하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이던 段위원장이 지난 8월 2일 경찰 자진출두에 앞서 다른 혐의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기로 청와대측이 약속했다는 게 민주노총과 천주교측의 주장이다.

형집행정지 취소에 따른 잔여형기 2개월여만 복역하면 불법집회와 파업을 주도한 혐의(교통방해 등)에 대해서는 추가 기소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10월 3일 만기일을 며칠 앞두고 경찰이 추가 혐의를 적용,다시 구속한 것은 정부의 배신행위라며 분노하고 있다.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이 같은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우리로선 이해가 안 간다. 段위원장의 명동성당 장기 농성사태 해결을 위해 신부가 중재에 나선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형사처벌 여부를 놓고 뭔가 협상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법 집행기관인 경찰이나 검찰이 아니라 청와대를 상대로 협의한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아울러 청와대측도 문제다.특정인의 범법 혐의 처벌 여부에 대해 대통령비서실 간부들이 선처 약속을 했다면 직무를 벗어난 월권행위가 아닌가. 평소 청와대를 통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인식을 무의식 중에 갖도록 했기 때문이라면 지나친 표현인가.

민주노총과 천주교계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정부측은 아무 말이 없다. 앞장서 설명하는 사람도 없고 진상을 밝히거나 책임지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법치국가에서 특정인의 범법 혐의 처벌을 둘러싼 협상이란 있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段위원장 자진출두 과정의 협의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잘못이 있으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