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믿건 말건 여야 폭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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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야 정치권이 '믿거나 말거나' 식 무책임한 폭로전을 벌여 국민을 더욱 어지럽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민심을 아랑곳하지 않는 치사하기까지 한 폭로전은 특히 대화를 주도해야 할 여야의 원내총무들이 앞장섬으로써 원만한 국회 운영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마저 잃게 한다.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총무가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된 여권 실세들의 실명을 밝히는 것과 함께 제2, 제3의 '이용호 사건' 에 대해서도 공개하겠다고 예고했다.

뒤질세라 민주당 이상수(李相洙)총무도 야당에 정치자금을 준 여러 벤처기업을 문제삼겠다고 나섰다. 두 사람 다 '소문과 제보를 가려' '확인되면 문제시' 라는 단서를 붙여 빠져 나갈 구멍을 열어 두고 있는데 바로 이런 '아니면 말고' 라는 식의 자세가 더 걱정되는 대목이다.

가뜩이나 한달 넘게 끌어온 권력형 비리 의혹 시비 등으로 경제난이 심화하는 판인데 정치권이 이렇게 무차별 폭로전에나 빠져든다면 위기상황을 과연 추스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불안이 가중될 것은 자명하다.

투자위축 등이 잇따를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명색이 여야 양대 정당의 대표의원이라는 사람들마저 의혹만 잔뜩 부풀려 국민을 현혹시켜 놓고 나몰라라 한다면 나라꼴은 어찌 되겠는가.

이제라도 그게 어느 쪽이건 권력형 비리 의혹이 있으면 검찰에 관련자료를 제공하든지 나름대로 진상을 따져본 뒤 아예 공개를 할 일이다. 사실 여부는 아직 모른다고 하면서 '세상이 깜짝 놀랄 일' 운운하며 미리부터 엄포성 입놀림이나 해서는 안된다.

'이용호 게이트' 에 계속 불을 지펴 정국 주도권에 쐐기를 박자는 야당이나 맞불을 놓아 수세를 반전시키려는 여당의 뻔한 속셈을 국민이 모를 리 없다.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은 물론 당장의 국회의원 재.보선이 화급하다고 해서 근거없는 소문을 퍼뜨린다면 정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정치불신으로 치달을 것이다. 가릴 것은 가리고 밝힐 것은 분명히 밝히는 자세가 정치불신을 해소하는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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