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 생산라인 매각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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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하이닉스반도체(http://www.hynix.com)가 채권단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자구책의 일환으로 주력 사업인 반도체 생산설비의 일부를 해외에 파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와 채권단은 6일 "하이닉스가 반도체 부문의 잉여 생산설비를 해외에 매각하는 방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안다" 고 밝혔다.

하이닉스 고위 관계자는 "경기도 이천 등 국내 세군데 12개 반도체 생산라인 가운데 회로선 폭 0.2㎛(1㎛은 1백만분의1m) 이상의 노후 설비 한두 곳을 우선 매각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고 말했다.

하지만 박상호 하이닉스 사장은 이날 오전 전사업장을 전화로 연결한 팀장급 이상 간부회의를 소집해 "반도체 시설 매각과 관련해 아무 것도 결정된 바 없으니 동요하지 말라" 고 말했다. 아직 구상단계에 있는 것으로, 성사되기까지는 숱한 고비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 반도체 분석가는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하이닉스가 반도체 라인까지 매각 대상에 넣음으로써 채권단과 국민의 정서에 호소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본다" 고 말했다.

반도체를 제외한 여타 사업들을 계속 매각해온 경기도 이천의 하이닉스 공장 겸 본사는 일반 산업공단으로 이미 탈바꿈하고 있다. 이천 공장은 올들어 웬만한 비주력 사업 분야를 분사하거나 외국에 내다팔아 총 1만4천여명의 사업장 직원 가운데 하이닉스 직원은 절반인 7천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36만평 규모의 이 공장에서 세계 3위 D램 업체인 하이닉스는 절대비중은 차지하지만 일개 입주업체인 셈이다.

지난해 말부터 유동성 위기에 빠진 하이닉스는 자금난 해소를 위해 세포 분열하듯 몸집을 줄여나갔다. 그렇게 해서 생긴 회사는 현대큐리텔(휴대폰).현대네트웍스(네트워크).현대이미지퀘스트(모니터).현대교정인증기술원(기술검사).현대오토넷(자동차 전장품).현대디지텍서비스(애프터서비스).현대시스콤(통신시스템).현대아스텍(총무.공무.환경) 등 올들어서만 10개가 넘는다.

통신.액정표시장치(LCD)같은 주요 사업뿐 아니라 부대 서비스사업, 심지어 구내식당 운영까지 분사했다.

이천 공장에는 해외 매각된 알짜 회사들도 적잖이 입주해 있다. 일찍이 1998년 반도체 조립부문을 미국에 팔아 칩팩코리아라는 이름으로 공장 안에서 가동 중이다. 올 상반기에 이 공장의 폐수처리 시설이 프랑스에 팔렸고, 지난달엔 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 사업이 진통 끝에 대만 캔두사에 넘어갔다.

같은 정문으로 드나들던 하이닉스 직원들 둘 중 한 사람이 불과 1년새 딴 회사 직원신분이 되다 보니 이런저런 웃지 못할 이야기도 많다. 분사나 해외 매각된 사업부문에서 일하던 직원이 오히려 새옹지마(塞翁之馬)를 되뇌며 안도하는 일이 그중 하나다.

하이닉스의 한 직원은 "대규모 인원감축을 감수하는 대신 부채를 털어내는 조건으로 떨어져 나간 사업부문의 경우 몇달새 흑자로 전환한 곳이 많다" 면서 "요즘엔 우리보다 실직 걱정을 덜 한다" 고 말했다.

지난 추석 때 흑자 전환한 일부 분사.매각 회사들은 임직원들에게 명절선물을 나눠줬지만 복지혜택이 없어져 선물을 받지 못한 하이닉스의 옛 동료들이 서운해할까봐 선물을 몰래 주고받는 촌극도 벌어졌다.

이천〓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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