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점수 대입' 진학지도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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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점수는 몇점일까?" 18일 서울 이화여고 3학년생이 수능시험 답안을 맞춰 보고 있다. 김성룡 기자

'오리무중(五里霧中)'.

수능시험은 끝났지만 수험생들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채점을 마치고 원점수를 알고서도 자기가 얼마나 시험을 잘 치렀는지, 어느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올해부터 원점수가 사라지고 표준점수.백분위만 제공되는 데다 그나마 결과는 한달 뒤인 12월 14일에나 알 수 있어 생긴 현상이다.

교사들은 진학 지도에 필요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해 중압감을 느끼고 있다. 대학별로 수능을 어떻게 반영하는지도 제각각이어서 더 그렇다. 포항고의 한 부장교사는 "상대적으로 수가 많은 중위권 학생들에 대한 진학 지도가 너무 어렵다"며 "원점수 총계를 기준으로 대략 희망 대학을 정해주고 논술.구술고사 준비를 시킬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 내 '위치'는 어디쯤=성적이 나올 때까지는 학생들의 상대적 위치를 파악하는 게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가채점한 원점수로 대학.학과를 정해주던 전통적인 진학 지도가 불가능해 학생.교사 모두 혼란을 겪고 있다.

선택과목별 난이도가 들쭉날쭉한 것도 문제다. 특히 사회탐구 일부 과목은 만점자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배화여고 이철희 진학지도부장은 "윤리를 본 150명 중 23명이 만점을 맞았다"며 "전국적으로 비슷한 분포라면 한 문제만 틀려도 3등급이 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 지원 대학 폭 넓혀라=혼란스럽다고 성적이 발표될 때까지 입시 준비를 미룰 수는 없는 일. 진학 지도 교사와 전문가들은 "표준점수는 원점수와 다르므로 가급적 지원 대상 대학을 넓게 정하고 상위권 학생들은 논술.면접 준비를 시작하라"고 권한다.

전문가들은 가채점한 원점수에 울고 웃을 필요가 없다고 충고한다. 대성학원 이영덕 평가실장은 "원점수가 높아도 표준점수는 떨어지는 등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원점수보다 모의고사나 학교 성적.등수 등을 따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진학 지도 경험이 풍부한 교사들의 판단을 따르라는 것이다.

상위권 학생은 우선 논술.구술 면접을 치르는 대학에 갈지를 정해야 한다. 정시모집에서는 논술.구술 면접 등이 당락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학생부 성적은 좋은데 수능 원점수가 기대에 못 미치면 수시 지원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수능이 끝난 뒤 수시 2학기 원서를 받는 대학은 43개다.

◆ 대학 수능 반영 방법 제각각=대학별로 수능 점수를 반영하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표준점수를 그대로 쓰는 곳이 있지만 백분위를 쓰거나 이를 합산.변형해 반영하기도 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충남대.연세대.한국외국어대.성균관대 등 68개대는 표준점수만 쓰고▶이화여대.숙명여대.홍익대 등 100개대는 백분위만을 쓴다.

반면 ▶고려대.경북대.전남대.동국대 등 18개대는 영역별로 표준점수와 백분위를 함께 반영하며▶서울대.부산대.서강대.한양대 등 7개대는 표준점수 외에 표준점수나 백분위를 학교 자체의 기준에 맞게 변형한 점수를 함께 반영한다.

일부 모집단위에서 수리 '가'형을 선택한 학생에게 가산점을 주는 대학은 114개대에 이른다.

반영비율도 대학.모집단위별로 다양하다.

서울대 인문계의 경우 언어.수리.외국어.탐구를 각 23.8%, 제2외국어/한문은 4.8%를 반영하고 자연계는 언어.외국어.탐구영역은 각 23.8%, 수리는 28.6% 반영하는 식이다.

이승녕.한애란 기자 <francis@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표준점수란…

수험생이 시험 과목을 선택해 치르는 2005학년도 수능은 '로또 수능'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과목간 난이도를 똑같이 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떤 과목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목 간 난이도 차이를 줄이기 위해 도입된 게 표준점수다. 표준점수란 영역.과목별 전체 수험생들의 원점수 분포를 정상분포로 만들어 수험생 개개인의 점수가 평균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따지는 환산점수다. 원점수가 아니라 표준점수를 사용할 경우 과목 간 난이도 차이에 따른 유.불리가 줄어드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표준점수는 또 다른 점수 왜곡을 피할 수 없다. 응시한 과목의 성적 분포(평균과 표준편차)가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따라 수험생 본인의 실력과 상관없이 점수를 덜 받거나 더 받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실력이 아무리 좋은 수험생이라도 응시한 과목이 너무 쉽게 출제돼 고득점자가 많을 경우 만점을 맞더라도 표준점수는 상대적으로 낮게 나온다.

실제로 지난 9월 수능 모의평가에서 사회탐구 선택과목인 정치의 만점(50점)은 표준점수가 74점, 세계사 만점은 61점으로 13점이나 차이가 났다. 세계사의 경우 너무 쉽게 출제되다 보니 만점자가 13.48%에 달했고 표준점수가 가장 낮게 매겨졌다. 문제는 이런 경우 어렵게 출제됐더라도 만점을 받았을 우수한 학생들도 어쩔 수 없이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수험생 간에 영역별.과목별 원점수 총점이 앞서더라도 표준점수로는 뒤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결국 표준점수로 수능 성적을 매기더라도 어떤 과목을 선택해 응시하느냐에 따라 수험생 간 유.불리가 생기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표준점수의 유.불리 문제점을 최소화하는 것은 대학들이 수능 점수 활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100개 대학이 표준점수 자체보다 백분위를 반영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백분위란 전체 수험생의 성적을 최고점부터 최하점까지 순서대로 배열했을 때 개인 성적의 상대적 위치를 1~100의 정수로 나타낸 것으로 성적표에 표준점수와 함께 제공된다.

서울대 등 7개 대학은 백분위를 활용한 자체 변환점수를 사용한다. 부산대는 탐구영역에서 선택 과목별로 같은 백분위에 위치한 표준점수 중에서 최고점을 지원자의 성적으로 일률 적용할 예정이다.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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