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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문화 수용 능력 기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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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캐나다의 태평양 쪽 관문인 밴쿠버 공항은 아시아 쪽에서 오거나 그쪽으로 가려는 여행객으로 붐빈다. 특히 여행 성수기인 여름철엔 우리나라에서 온 많은 관광객과 유학생이 이 공항을 거쳐 간다. 이번 여름 밴쿠버 공항에 나갔다가 우연히 우리나라에서 단체로 온 초등학교 학생들을 만났다. 이들은 여름방학 동안 캐나다에서 영어 연수를 마치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초등학교 4~5학년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의 표정은 밝고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국내의 재미있는 체험학습장에라도 온 듯 재잘거리는 어린이들에게 1만㎞ 가까이 되는 서울과 밴쿠버 간의 지리적 장벽은 존재하지 않았다. 국경을 넘어 낯선 나라에 왔다는 긴장감이나 두려움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교통이 불편했던 1960년대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내가 경험한 것과는 전혀 다른 지리적 공간의식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

초등학생 때 나는 외할머니가 계신 부산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기 위해 매년 서울에서 부산행 완행열차를 탔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선 새벽에 일어나 서울역에 나가야 했다. 오후 늦게 부산에 도착해 다시 버스를 타고 동래에 있는 외할머니댁까지 가면 밤이었다. 당시 내게 서울과 부산은 하루를 꼬박 소비해야 갈 수 있는 먼 거리였다. 제트여객기 같은 공간축소 기술의 발달로 그보다 더 짧은 시간에 서울에서 밴쿠버까지 갈 수 있는 요즘, 밴쿠버 공항에서 만난 초등학생들은 서울과 밴쿠버 간의 거리를 내가 초등학생 시절 느꼈던 서울과 부산 간 거리보다 더 가깝게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 초등학생이 갖는 국경에 대한 인식도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세대와는 크게 다르다. 해외여행이 제한적이었을 때 사람들은 지리적 국경과 거의 일치하는 심리적 국경을 가졌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노후를 보내는 물리적 공간과 자신이 심리적 또는 정서적으로 소속감을 느끼는 공간은 서로 일치했다. 삶과 관련된 거의 모든 활동이 국경 안에서 이뤄졌고, 생애의 대부분을 국경 내에서 보냈다. 심리적 국경이 지리적 국경을 초월하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해외여행을 시작하는 요즘 젊은 세대들은 유학.연수.배낭여행.취업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생애의 상당기간을 나라 밖에서 보낼 가능성이 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또 향상된 외국어 구사능력과 인터넷과 같은 통신기술의 발달로 전 세대보다 훨씬 많은 해외문물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심리적 또는 정서적으로 소속감을 느끼는 공간은 우리나라의 지리적 국경 내에 국한되지 않고 그 밖으로 무한히 확대되고 있다.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이 장차 맞이하게 될 상황에 능동적으로 적응.개척해 나가는 데 필요한 능력 배양이라고 할 수 있다. 전에 비해 크게 다른 미래상황을 직면하게 될 젊은 세대들이 필요로 하는 능력 또한 지금과는 크게 다른 게 될 것이다. 전 세대에 비해 축소된 지리적 공간과 전 세계로 확대된 심리적 국경을 갖고 살아갈 젊은 세대들이 맞이하게 될 미래상황 중 하나는 이질적 문화환경에서 이질적 문화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점점 더 지구촌화돼 가고 있는 경제하에서 해외는 물론 국내의 직장에서 일할 경우에도 그 같은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같은 미래상황에서 이질적 문화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은 젊은 세대들이 사회적 성공은 물론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한 능력은 단순히 외국어 실력만으로 배양될 수 있는 건 아니며 이질문화를 인정하고 수용하려는 노력을 통해 얻어질 수 있을 것이다.

탁광일 생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