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약 보험 제외 배경] 파탄 재정 국민에 떠넘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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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정부가 일반의약품을 건강보험 혜택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건보재정을 절감하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다.

의약분업으로 환자 부담이 늘어나 국민 불만이 팽배해 있는데도 환자 부담을 또 늘리는 조치를 취해야 할 정도로 건보재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는 환자 부담이 늘더라도 건보재정이 안정될 기미가 좀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건보재정에서 일반약을 부담해 주는 국가는 거의 없다" 고 정부는 설명하고 있지만 시민단체들은 "건보재정 파탄 책임을 또 환자에게 떠넘기는 조치" 라며 반발하고 있다.

◇ 일반약 제외 영향=우선 환자 부담이 늘 것은 분명하다. 우선 내년 4월까지 1천4백여개를 제외함으로써 1천6백여억원의 건보재정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환자가 더 부담한다는 뜻이다.

다만 의사가 건보혜택 대상에서 제외된 약을 처방하지 않을 수 있고, 환자가 처방전을 받아 감기약을 조제하는 데 4천여원을 쓰느니 아예 약국에서 종합감기약을 사먹는 식으로 의료형태를 바꾸게 하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건보 혜택에서 제외되는 일반의약품 가격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사라져 약값이 크게 오를 가능성도 작지 않다.

보건복지부는 미국 메디케어(노인대상 건보)의 경우 외래처방약에, 영국은 광고를 하는 약(일반약)에 대해 건보 혜택을 주지 않고 프랑스는 치료 효과에 따라 차등적으로 혜택을 주는 점을 들어 이번 조치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의약분업으로 본인 부담금이 18.7% 늘어난 데다(복지부 지난 3월 자료) 지난 5월 환자 본인부담금을 40.6% 올린 점을 감안하면 반발은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건강연대 강창구 정책실장은 "가뜩이나 의약분업 후 국민부담이 늘었는데 또 국민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 고 말했다.

◇ 건보재정 안정 미지수=복지부는 지난 5월 대책으로 의료기관이나 약국의 진료비.조제료 청구액이 월 평균 8백17억원(7.1%)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으나 실제로 5백60억원(4.9%)만 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월 추산할 때 효과의 최대치를 잡았기 때문에 당시 재정 추계보다 올해 적자가 1천2백85억원(5개월치) 더 늘게 됐다.

게다가 이번 대책으로 연간 4천여억원이 절감된다 하더라도 담배 부담금 실시 자체가 불투명하고 내년 건보료 인상(9%)도 쉽지 않을 전망이어서 건보재정 안정까지는 갈 길이 멀다. 따라서 2006년 건보재정 흑자전환 목표는 도상 연습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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