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믿었던 이슬람 '맹방' 냉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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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이 준비 중인 테러응징 작전에 빨간불이 켜졌다.

미국이 대테러전쟁을 치르는 데 적극적인 협조가 꼭 필요한 중동의 두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 등 이슬람 국가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3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현지로 급파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맹방을 자처하던 이들 국가는 테러대책에는 협조하되 전쟁참여에는 부정적 입장을 보여 미국이 구상 중인 테러대전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혀=럼즈펠드 장관이 순방한 중동 3개국은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이다. 오만은 1980년대 이래 미국과 군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다.

이집트는 미국의 주요한 전략 요충지로 91년 걸프전 당시 3만6천명의 지상군을 미국이 주도한 연합군에 지원해 주었다. 미군 수천명이 주둔하고 있는 중동의 전략기지인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대표적인 중동의 친미국가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는 당시와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며 한사코 군사작전에는 반대하고 있다. 공연히 이번 작전에 참여했다 이슬람국가들로부터 '왕따' 를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자칫 서방국가와 이슬람국가간의 전쟁으로 비치면 종교분쟁으로 정권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이들 국가가 몸을 사리는 이유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선 믿던 도끼에 발등이 찍힌 격이다. 전통 맹방인 이들 국가마저 테러조직에 대한 정보 제공과 군사기지 제공 등의 협조를 거부하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응징작전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 보복전쟁 어떻게 될까=럼즈펠드 장관은 4일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과의 회담 결과를 설명하며 "(테러와의 전쟁은) 틀림없이 열전(hot war)보다 냉전(cold war)에 가깝다" 면서 냉전하의 (동서양 진영의)대립은 약 50년 계속됐으며 그 최후는 대포의 일격이 아니라 내부 붕괴에 의한 것이었다" 고 말했다.

다시 말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 대한 군사전략도 정치적 압력을 가하면서 동시에 내부 붕괴를 재촉하는 장기적인 작전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는 앞서 그가 "미국의 보복전쟁이 대규모 공세로 시작되지 않을 것" 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럼즈펠드 장관은 그러나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응징과 관련, "그 조직이 남아 있는 한 테러는 계속된다" 면서 "보복공격은 테러 조직이 괴멸할 때까지 계속될 것" 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공격시기와 관련, "군사행동에 착수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고 말해 '군사행동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는 일반의 관측을 부정했다.

이와 관련, 알랭 리샤르 프랑스 국방장관은 "미국의 보복공격이 수주 내에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고 4일 밝혔다.

그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 참여의사를 밝힌 국가들이 보복공격에 필요한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 라면서 "이런 결정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고 주장했다.

반면 미군 소식통들은 3일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중동과 우즈베키스탄 방문을 마치고 6일 귀국한 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전면적인 군사행동을 개시한다는 결정을 내릴 것" 이라고 내다봤다. 일부 군사 분석가들은 반격의 위험성을 감안해 달빛이 잦아드는 오는 17일께 공격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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