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한반도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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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01년 5월 1일=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던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 계획 재천명

7월 14일=미, 태평양 상공 대기권 밖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요격 실험 성공

7월 15일=장쩌민 중국 주석, 러시아 방문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공동 대응 다짐

9월 7일=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미 상원 군사위원회, 부시 행정부가 요구한 MD 관련 예산 83억달러 중 13억달러 삭감

9월 11일=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 등에서 동시다발 테러 발생

9월 21일=미 상원, 삭감했던 MD 관련 예산 되살려 총 3천4백30억달러의 2002년 국방예산안 승인

위의 일지는 지난 다섯달 동안 미국 부시 정부의 MD구상이 달려온 극적인 운명을 간명하게 보여준다. 민주당의 견제와, 러시아.중국의 반발로 난항을 겪던 부시의 21세기 군사전략이 뜻밖에 9.11 테러사태를 계기로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이다.

신간 『한반도의 선택』은 이런 시점에서 MD문제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보여주려는 글이다. 단적으로 말해 미국의 탈레반 공격은 우리가 전쟁 당사자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데 반해, 이번 테러 사태로 날개를 단 MD구상은 우리의 안전보장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게 이 책의 분석 결과이기 때문이다.

부시 정부가 내세우는 MD추진의 최대 명분이 북한을 포함하는 '무책임하게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지 모르는 깡패국가' 에 대한 대응인 이상 MD는 한반도를 21세기 군비경쟁.신냉전의 중심에 서게 할 것이며, 그 파장의 첫번째 제물로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올 1월에 열린 '동북아 평화와 비핵지대 추진을 위한 한.일 국제대회' 발표문을 수정.보완한 글 두 편과, 뉴욕 뉴스쿨의 윌리엄 하퉁 무기거래연구센터 소장이 MD주창자들과 미 군산(軍産)복합체 간의 커넥션 문제를 다룬 논문 등 9편의 글로 이뤄져 있다. MD의 기본개념에서부터 세계와 동아시아, 그리고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과 대안까지 차분히 짚어 준다.

이 책의 기획자이자 공동저자인 정욱식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민 네트워크' (평화네트워크) 대표 등은 탈냉전 시대에도 지속되는 핵 위기를 해소할 유일한 방법은 MD와 같은 또 다른 첨단 무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핵무기의 제거와 동북아시아 지역의 비핵지대화를 우선 추구하는데 있음을 주장한다.

필자가 여럿이라 중복되는 내용도 없지않고, 급박하게 변하는 최근 정세를 포괄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지만, MD의 본질이나 우리의 정책방향을 살펴보는 데는 유감없는 책이다.

MD라는 사안은 다소 전문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국가 안보영역은 소수 테크노라트의 손에 의해 쉽게 기득권의 유지.강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를 보다 대중적 담론으로 이끌어내고자 한 이 책의 기획의도는 유의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통계자료와 용어 해설도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특히 부록으로 실은 '미 정부가 각국 미 대사관에 보낸 MD관련 대처방안' 은 본문을 읽고 난 뒤에 보면 부시 정부의 논리가 가진 허점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최근에 나온 『미국 패권의 이해』(정항석 지음, 평민사)도 'MD와 미국 패권' 의 문제를 잘 보여주고 있는 책으로, '한반도의 선택' 에 관한 부분에선 조금 다른 시각을 읽을 수 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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