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과제 대토론회 - 선진 일류국가 진입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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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29일 제3회 국정과제 공동 세미나에 참석한 임종룡 기획재정부 제1차관(앞줄 가운데) 등이 주제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이번 토론회는 ‘품격 높은 선진 일류국가 진입’이라는 주제로 이틀간 진행됐다. [조용철 기자]

자신감이 묻어났다.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사장 김세원)가 주최한 ‘제3회 국정과제 공동 세미나 : 품격 높은 선진 일류국가 진입을 위한 대토론회’ 둘째 날 얘기다. 총리실과 중앙일보 후원으로 29일 경기도 과천의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진행된 토론회는 한국 경제의 역량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선진화’를 위해 고민했던 첫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이날 토론회의 시선은 외부를 향했다. 참석자들은 G20 국가로서의 책임을 이야기했고, 경험을 통한 개발도상국 경제 발전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동아시아 금융 안전망 만들고 선진국과 개도국 ‘가교’ 돼야

G20 국가의 책임

‘가교(架橋)’. 채욱(사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우리나라의 역할을 이렇게 규정했다. ‘G20 국가로서 대외경제 정책의 책임과 과제’라는 주제 발표에서다.

그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글로벌 경제 불균형을 해결하는 데 우리나라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한 방안도 제시했다. 동아시아 지역의 금융안전망을 강화하고, 무역·통상 분야를 확대하며, 국제협약을 준수하는 것이다. 그는 또 “지역 금융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우리나라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역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IMF의 지원은 낙인 효과 때문에 지원받는 나라의 자금 사정을 더 악화시키는 역효과도 있다”며 “이 때문에 개도국은 외환보유액을 늘리기 위해 수출 의존도를 높이게 되고, 이는 글로벌 무역 불균형의 원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는 데 우리나라가 앞장서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9년 5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국 재무장관회의에서 치앙마이이니셔티브(CMI) 다자화에 참여했다. 그 결과 총기금 1200억 달러 중 192억 달러를 투입했다. 이는 위기 시 언제든지 빼 쓸 수 있는 돈이다.

그러나 그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채 원장은 “기금을 추가로 마련하고 기금 사용에 대한 감시기구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리나라가 국제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전제조건으로는 개방 확대를 꼽았다. 자유무역협정(FTA)과 다자간 무역협상인 도하개발어젠다(DDA) 타결에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DDA 협상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이익 균형을 찾아내는 게 최대 과제”라며 “우리나라는 활발한 개방 정책을 펼치면서 동시에 개도국에 관세 혜택을 늘림으로써 둘 사이의 균형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DDA 협상을 성공시키면 FTA와 비견할 만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FTA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DDA 협상에 인력과 자원을 집중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안충영 중앙대 석좌교수는 “우리나라가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이해가 상충되는 부분을 조정할 수 있도록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교역 부문에서 개도국에 대한 배려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엔 함께 뜻을 모았다. 1996년까지 우리나라가 수출에서 관세 혜택을 본 것처럼 우리도 개도국에 일반특혜관세(GSP)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채 원장은 “개도국엔 중요한 경제 발전의 수단이 될 수 있는 만큼 우리가 받은 혜택을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성훈 교수도 “최빈국들에 무기류를 제외한 모든 제품에 무관세를 적용하는 방식의 과감한 GSP를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경진 기자


한국경제 발전 경험 ‘모듈화’
경협 기초 자료로 활용을

‘공적개발원조’ 전략

“가나와 베트남 같은 나라는 한국을 부러워한다기보다 한국에서 무언가를 찾아보려 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현오석(사진) 원장이 한 말이다. 공적개발원조(ODA)의 필요성과 전략을 설명한 ‘한국의 경험을 통한 개발도상국 경제 발전 지원방안’을 발표하면서다. 원조를 받던 개도국에서 원조를 하는 지원국으로 바뀐 세계 첫 번째 국가인 한국의 경험을 개도국들이 배우려 한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1월 국제사회의 원조 제공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24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2008년 우리나라가 제공한 ODA 규모는 9328억원으로, 전년 대비 36.8% 뛰었다. 나눌 줄 아는 나라가 돼 가는 셈이다.

현 원장은 우리의 경험을 ‘기준’이라고 일컬었다. 그는 “개도국들이 세계은행 등에서 경제 조언을 받지만 선진국 중심의 경험에 따른 의견이어서 한계가 있다”며 “경제 발전 욕구가 있는 국가들 입장에선 한국의 사례가 발전 모델의 기준”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1998년 외환위기를 겪고, 여기에서 헤쳐 나온 과정도 ‘시행착오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발전 전략의 공유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을까. 기획재정부와 KDI는 2004년부터 ‘경제 발전 경험 공유사업(KSP)’을 추진하고 있다. 개도국의 경제 정책에 대한 연구와 자문을 제공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베트남 개발은행 설립 지원, 우즈베키스탄의 경제자유구역 설립 제안 등 2008년 현재까지 13개국을 대상으로 83개 과제의 컨설팅에 응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현 원장은 경제 발전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모듈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새마을운동, 수출진흥정책 등은 개도국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정책들”이라며 “이를 일련의 공식화 작업, 즉 모듈화해 지식집약적 경제 협력의 기초자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재정부와 KDI는 거시경제·재정관리 분야 등의 ‘10대 분야 경제 개발 경험 표준 콘텐트’를 올해 말까지 확정할 계획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산림녹화 정책, 의료보험제도 도입 방식 등 80여 개 세부 과제가 담긴다.

토론자로 나선 임종룡 재정부 제1차관은 ‘한국형 ODA’를 4C로 정의했다. 한국의 발전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contents)해 이를 전달할 컨설턴트를 육성(consulting)하고, 개도국 정책결정자에 대한 교육훈련을 강화(capacity building)하고, 발굴된 사업을 일괄 지원(comprehensive support)한다는 의미다. 임 차관은 “ODA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자세는 실리를 좇는 것이 아닌 ‘우리가 돕겠다’는 따뜻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 “개도국이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인 만큼 개방형 대학 시스템을 전수해야 한다”(안충영 중앙대 석좌교수), “60~70년대의 개발 1세대가 아직 살아 있다는 점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김석우 21세기 국가발전원장)는 의견도 나왔다.

권호 기자


“신재생에너지 투자펀드 조성을” “물 관리 국제기구 만들자”

참석자들 정책 제안 잇따라

녹색성장, 구호로는 좋은데 딱히 방향 잡기가 어렵다. 이번 세미나에서도 녹색성장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해양·에너지·정보기술(IT)·환경 분야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다.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고민이기도 했다.

신영태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원장은 녹색성장의 일환으로 해양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파도의 힘을 이용한 에너지 발전과 해양 바이오산업, 크루즈선과 친환경 선박을 개발해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최장현 국토해양부 제2차관은 “본격적인 해양 경영시대에 맞는 통합 행정체제를 갖추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방기열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은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 설비의 수입 의존도는 태양광이 75%, 풍력은 99.6%에 달한다”며 “신재생에너지 투자펀드를 조성해 유망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석준 과학기술정책개발원장은 나아가 “월드 그린펀드를 조성해 개발도상국가에 공공연구기관 설립을 지원하자”고 제안했다.

방석호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은 “생산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IT의 활용도가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며 “IT를 전 산업 분야에 융합해 생산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기술을 표준화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태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장은 “물 관리 분야에 대한 국제기구가 없으므로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선도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나선 정래원 외교통상부 기후변화대사는 “녹색성장의 가치를 지나치게 우리나라의 경제적 이익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이를 전 세계적인 패러다임으로 선도해 우리의 국격을 높이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글=김경진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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