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보내준 MBA 사내 강의로 보답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9면

“1955년 미국 기업의 평균수명은 45년이었습니다. 지난해는 몇 년이었을까요? 13년입니다. 지속가능 경영이 왜 중요한지 아시겠죠.”

21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의 현대오일뱅크 대회의실. 40여 명의 직원이 ‘교수님’의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수업 주제는 경영 혁신과 친환경·윤리·사회공헌 경영을 통해 지속 가능한 회사를 만드는 법이다.

이날 강단에 오른 사람은 이 회사 이정현(47) 에너지정책팀장이다. 그는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회사 지원으로 2008년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MBA)을 졸업하면서 동료에게 경영학 강의를 할 수 있게 됐다.

현대오일뱅크는 2003년부터 직원들에게 국내외 MBA와 세무·기계공학 등 전문대학원 교육 기회를 주고 있다. 지난해까지 약 20억원을 투자해 4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국내 MBA는 등록금·교재비로 1인당 최고 3500만원, 외국 MBA는 생활비를 합쳐 1인당 2억원 정도를 썼다.

고급 인재가 늘면서 회사는 이들의 활용 방안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때 “MBA 출신들이 강의하는 별도 강좌를 사내교육 과정에 추가하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회사의 지원에 감사하던 MBA 졸업생들도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렇게 해서 마련된 게 ‘업(業)그레이드 프로그램’이다. 교육을 통해 업무의 질을 올린다는 뜻이다.

강좌는 휴가철인 8월을 제외하고 매달 한 번 열린다. 첫 해인 지난해 11차례의 수업을 연인원 700명이 들었다. 올해는 4월까지 250명이 수강했다. 강의 내용을 촬영해 사내 전산망에 올리기 때문에 지방 근무자도 참여할 수 있다. 회사 측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연 2억원 정도의 사내 교육비를 아끼고 있다.

사내 강사들은 MBA 과정에서 배운 지식을 회사 실무와 연관지어 강의하기 때문에 경영학 비전공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4월 강의를 맡은 이정현 팀장은 누적적자에 시달리던 현대오일뱅크가 2002년 지속가능 경영을 시작한 뒤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설명했다.

교육 내용도 실제 MBA 수업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짜임새가 있다. 고려대 MBA 출신으로 지난달 강의를 했던 기획팀 변점석(41) 차장은 수강생을 ‘오일농산’과 ‘야채뱅크’ 두 팀으로 나눠 배추 납품에 대한 가상 경쟁을 시켰다. 수강생이 짧은 시간에 경영학의 ‘게임이론’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현대오일뱅크에는 MBA 출신을 포함해 170여 명의 사내 강사가 있다. 회사는 사내 강사를 3등급으로 나눠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효율적인 교습법을 가르치고 있다. 이 회사 인재개발팀장인 김주희(44) 상무는 “사내 강사들은 자신이 배운 내용을 가르치면서 다시 한번 확실히 익힐 수 있다”며 “수업을 듣는 직원은 새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 동시에 강사로 나선 동료의 발전에 자극을 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