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 쇼크] 주택 임대시장 월세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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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 관악구 봉천동 32평형 아파트에 사는 高모(37)씨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전세를 월세로 바꾸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지난 2년 동안 전세보증금 1억1천만원에 살았는데, 전세기간이 끝나자 집주인이 보증금 5천만원에 월 80만원짜리 월세로 바꾸겠다고 나섰다. 高씨는 다른 집을 찾아봤지만 월세로 나온 물건이 대부분이었다.

어쩌다 눈에 띄는 전세 물건도 전세보증금이 1억5천만~1억6천만원으로 크게 올라 있었다. 그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7% 안팎이라는 점을 알고 이번 기회에 대출받아 아파트를 장만할 생각이다.

초저금리 상황이 부동산 시장의 구조를 바꾸고 있다. 한국의 독특한 임대 형태였던 전세가 줄어 들고 월세가 많아졌다.

이와 함께 부동산 임대업이 돈을 굴리는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많은 임대 부동산이 월세로 바뀌면서 전세 물건의 보증금이 오르고 그 결과 부동산 가격의 오름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택은행이 전국 3천2백여개 부동산중개업소를 조사한 결과 서울과 수도권의 전세입자 10명 중 4명이 집주인으로부터 월세로 바꿔달라는 요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약 2명(22%)은 실제로 월세로 바꿔 계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 결과 지난달 체결된 임대차계약 중 월세의 비중이 50%에 육박했으며,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월세 전환이 많아지면서 전세가격도 오름세다.

지난달 전세가격은 2.5% 올라 비수기인 8월의 상승률로는 주택은행이 매매가격 조사를 시작한 1986년 이후 가장 높았다. 금리가 낮아지자 주택을 여러 채 구입해 월세를 놓는 주택임대사업자도 늘고 있다.

지난 7월 말 현재 건설교통부에 등록한 주택매입 임대사업자는 1만1천8백75명. 1년 전(8천5백13명)보다 40% 늘었다. 이들은 집을 세 채(올해부터는 두 채)이상 갖고 임대소득세를 내겠다고 등록한 사람들이다.

전세가 월세로 바뀌는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가격 동향을 조사하는 주택은행 전성표 대리는 "전세를 월세로 바꾸기 위해 집을 비워 놓고 기다리는 매물이 상당하다" 며 "집주인 입장에선 몇 달 놀리더라도 월세를 받는 게 이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너도 나도 월세로 바꾸려들자 월세 이자율은 낮아지는 추세다. 주택은행에 따르면 서울 및 수도권의 평균 월세 이율은 지난해 말 연 17%에서 지난달 14.4%로 낮아졌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월세 이자율이 시중 금리수준으로 낮아질 때까지 전세의 월세전환 현상이 계속되면서 주택 임대시장이 월세 중심으로 바뀔 것으로 전망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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