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바이올린계 대부' 아이작 스턴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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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이 지난 22일 뉴욕 맨해튼의 한 병원에서 심장병으로 별세했다. 81세.

스턴은 바이올린을 손에 들고 뿔테 안경을 이마에 올린 채 무대에 등장하곤 했다. 1997년 세종문화회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첼리스트 장한나.요요마 등과 함께 무대에 선 갈라콘서트가 그의 마지막 내한 공연이 됐다.

그는 팔순이 넘어서도 포도주와 시거를 즐기며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지난해 5월엔 뉴욕 카네기홀에서 교육 행정가 43명에게 바이올린을 특별 교습하기도 했다.

스턴은 우크라이나 크레메네츠에서 태어나 생후 10개월 만에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랐다. 일곱살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열세살 때 뉴욕 무대에 데뷔했다. 당시 음악평론가 버질 톰슨은 뉴욕 헤럴드 트리뷴에 쓴 글에서 그를 "전세계의 바이올리니스트 대가 중 한명" 이라고 극찬했다.

그는 55년 카네기홀을 매각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지휘자 브루노 발터 등 음악인들의 서명을 받아냈다. 또 카네기홀 수호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뉴욕시가 이 건물을 5백만달러에 사들이게 했고 60년 카네기홀의 초대 극장장이 됐다. 97년 카네기홀 대극장은 '아이작 스턴 오디토리엄' 이라고 명명됐다.

스턴의 별명은 '세계 음악계의 막후 실세' '유대계 바이올리니스트의 대부' 였다. 그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 항거, 푸르트벵글러.카라얀과는 한번도 협연하지 않았고 "살아서는 독일 땅을 밟지 않겠다" 고 고집했다. 하지만 99년 4월 쾰른에서 실내악 워크숍을 열면서 34년 이후 처음으로 독일을 방문했다.

그는 75세 생일 기념 인터뷰에서 "청중과 무대와 젊은 음악가를 사랑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무대에 서게 한 원동력이었다" 고 술회했다. 45년 소니 클래시컬과 전속 계약을 해 1백종 이상의 음반을 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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