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3개 씽크탱크 '위기관리 보고서'를 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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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고경영자(CEO)가 진두 지휘하고,위기의 실상을 정확히 공개하라”

삼성이 마련 중인 ‘위기 대처법’의 핵심이다.삼성 그룹은 20일 이런 내용을 담은 ‘위기관리경영’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21일 열릴 특별사장단 회의의 토론 자료로 쓰인다.이에 앞서 삼성금융연구소는 테러 사건 다음날인 12일 ‘미국 사태에 따른 경제 및 금융시장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테러 사태의 향후 추이를 예측하고 세계 금융시장과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한 자료다.

1주일 뒤인 19일 삼성경제연구소는 그룹내 각 계열사가 경영 전략을 세우는데 참고할 ‘기업 대응 방안’보고서를 마련해 이날 열렸던 사장단 회의에서 발표했다.

삼성의 씽크 탱크인 이들 세 기관의 보고서는 모두 외부로 공개되지는 않았다.그러나 그룹 내에서는 각 계열사에 배포돼 ‘정보의 공유’가 이뤄졌다.다음은 이들 보고서 요지.

◇ 위기의 4가지 유형=테러 등 각종 범죄.우발적 사고.자연 재해는 기업 경영에 큰 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돌발적인 위기' 만 있는 게 아니다. 해외에 진출하면서 현지의 법과 제도, 문화와 관습, 시장 관행을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국제화 위기' 도 있다.

정보유출.해킹.바이러스.시스템 다운 등 IT화에 따른 위기, 소비자 파워 확대.기업 경영에 대한 사회적 감시 강화에 따른 위기 등 '환경 변화' 도 위기 요인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경영 오류의 위기' 다. 시장 흐름을 읽지 못해 잘못된 판단을 하고, 위기 발생 때 신속한 대응을 못하고, 비도덕적 행위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것 등으로서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 위기 대응은=위기 당시는 물론 사전.사후 등 단계별로 위기관리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평상시에는

▶위기 발생 징후를 조기에 포착할 수 있도록 위기감지 시스템을 갖추고

▶예상 가능한 위기별 행동 요령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훈련도 해야 한다.

위기 발생때에는

▶최단시간내 진상을 파악하되 정보의 왜곡.축소 경향을 주의하고

▶인론 등에 위기의 실상을 정확히 알리며

▶최고경영자가 직접 나서야 한다. 침묵은 쓸데없는 예측.소문 등으로 위기를 키운다.

또 평소 위기관리는 CRO(Chief Risk Officer)가 담당하지만 위기가 현실화되었을 때에는 CEO가 진두 지휘해야 일사불란하게 대처할 수 있다. 사후에는

▶위기 대처 과정 및 결과를 기록, 평가한 뒤 조직 전체에 알리는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 견실한 경영이 필요=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유가.원자재값 상승에 대비해 최소한의 군살까지 제거하는 등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한 비상경영체제를 갖춰야 한다.

차제에 서비스.지식정보사업 등 고수익사업을 육성하는 등 사업구조를 고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 공생의 이미지 실천=국제사회에선 미국의 슈퍼 파워에 대한 선망과 함께 질시도 있다. 이번 사태는 질시에 따른 위험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준 반면 교사다.

삼성이 진정한 일류 기업이 되려면 경영을 잘 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약자를 배려할 줄 아는 '좋은 기업' 이 되어야 한다. 소외 계층을 돕고, 거래처.협력업체.종업원의 어려움을 함께 나눠야 한다.

◇ 위기에 대응하려면=피해를 최소화하는 관건은 대응의 속도다. 종업원의 불안심리 확산도 초기에 극복해야할 과제다.

샐로먼 스미스 바니는 이번 테러발생 직후 전세계 직원들에게 최고경영자 명의의 e-메일을 보내 종업원들을 안심시켰다.

코카콜라는 제조 비법을 아는 최고경영진이 같은 비행기 타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예상해야 한다. 마이크로 소프트는 1997년 이미 가격경쟁.기술유출.환율급변 등 1백44개 위기 요인을 상시 감시하는 체제를 갖추었다.

◇ 위기는 기회를 동반한다=중동 특수는 오일 쇼크때 발생했다. 새로운 비즈니스 찬스가 어떤 것인지를 탐색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 세계 경제에 대한 영향=세계 금융 중심지인 뉴욕 월가의 기능 마비가 문제다. 미국의 군사보복 가능성은 높지만 아랍국가들과의 전면전 가능성은 낮다.

당분간 '힘의 우위' 를 추구하는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는 강화될 전망이다. 남북관계 개선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단기 패닉 가능성이 우려된다. 국제자본이 유럽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눈여겨 봐야 한다. 증시 침체.달러 약세.국제 금리 하락.유가 상승 등이 예상되나 그 폭과 기간은 불투명하다.

◇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수출 위축이 심화되고, 스테그플레이션(성장은 둔화되고, 물가는 오르는 현상)가능성이 있다.

재정지출 확대.금리 인하.감세(減稅) 등 조치가 예상된다. 금리는 상승.하락 요인이 혼재돼 있다. 주가.원화 환율은 단기 하락이 예상된다.

민병관.김동섭.홍승일.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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