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제정책, 할 일과 피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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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테러대전이 임박한 시점에서 우리 정부의 경제정책 대응이 부분적으로 과잉반응을 보이고 있어 걱정이다. 나름대로 애를 쓰고는 있으나 시기와 방법,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여러 징후를 보이고 있다.

지난 한주 동안 정부의 대응책은 시장안정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금융.증권 및 외환시장의 동요를 최소화하기 위해 19일 단행된 콜금리 인하 등 강도 있는 대책들을 적지 않게 동원했다. 시장의 수요.공급과 참가자들의 심리를 함께 안정시키려는 이같은 조치들은 미국은 물론 여러 나라들도 다투어 도입하고 있다.

다만 정책의 타이밍이나 내용 면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금리인하는 기왕 하려면 지난주가 적기였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냄비 증시' 의 속성을 감안했다면 가격제한폭 축소조치가 필요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더욱 큰 문제는 아무리 급해도 피해야 할 정책들이 거론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주식 안 팔기 운동' 과 제2 증시안정기금 조성 방안이다. 이중 주식 안 팔기 운동은 18일 김대중 대통령이 과거 금 모으기 운동의 경험을 되살려 제안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발상은 본질적으로 투기적 시장인 증시의 속성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테러사태 직후 주식매수를 결의했던 증권사나 투자신탁회사 등 기관투자가들조차 뒤로는 주식을 내다파는 것이 증시다.

단순히 애국심에 호소하는 주식 안 팔기 운동은 선량한 개인투자자들만 희생시킬 위험이 다분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부여받은 국가원수가 언급하기에는 부적절한 것이 아닐 수 없다.

1990년대 초 도입됐던 증시안정기금은 주가 하락을 제대로 막지도 못한 채 돈을 댄 은행.증권 등 기관들만 멍들게 했던 실패한 정책이다. 이번엔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세계를 바꿀 사건' 으로 불리는 미국 테러의 여파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몇 달이 갈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정부가 호흡을 길게 잡고 할 일과 피할 일을 가려 차분히 대응해 나가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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