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추적] 공항서 사라진 ‘비리군수’ 몰랐나 놓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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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원대 별장을 뇌물로 받고 감사원에 적발, 위조여권으로 인천공항 출국 시도, 출국 좌절.’

27일 공문서 위조 혐의로 전국에 지명수배된 충남 당진의 민종기(사진) 군수 얘기다. 그는 출국이 좌절된 후 유유히 공항을 빠져 나와 종적을 감췄다. 온갖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그가 어떻게 그렇게 간단하게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우선 그는 감사원이 3개 시장·군수의 비리에 대한 감찰활동을 발표하면서 세간에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다. 감사원은 22일 민 군수가 2005~2008년까지 C건설사에 관급 공사 7건을 몰아주고 3억원 상당의 별장을 뇌물로 받았다고 발표했다. 또 여직원에게 3억3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사주고 10억원 이상의 비자금을 관리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민 군수를 비롯한 3명의 시장·군수에 대한 감찰 활동을 검찰에 넘기고 수사 의뢰했다. 이에 대해 민 군수 측은 펄쩍 뛰었다. 감사원 발표는 입증된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2~3일 내로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겠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그는 돌연 24일 오전 인천공항에 나타났다. 중국 칭다오(靑島)로 출국하기 위해서였다. 오전 11시30분쯤 일이다. 그는 공항 3층의 자동출입국심사등록센터에 손모씨의 여권을 들고 나타났다. 위조여권이었다. 그러나 자동출입국심사등록센터 내의 여 심사관 두 명이 “여권에 붙은 사진이 이상하다”며 감시과에 정밀감식을 의뢰하는 전화를 했다. 그사이 그는 여권을 현장에 놔둔 채 도주했다. 누가 봐도 범죄 혐의자로 생각할 수 있는 정황이었다. 그러나 심사관들은 이 같은 사실을 공항 내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출입국관리사무소 측은 “사무실 구조상 여직원이 쉽게 쫓아갈 수 없었고, 위조여권 주인공이 민 군수인지 몰랐고, 위조 여부를 확인하던 중 달아난 상황이어서 경찰을 부를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민 군수는 한 시간쯤 뒤 다시 공항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자신의 진짜 여권을 들고서였다. 그는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 출입국심사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심사대 직원은 “출금 상태이니 검찰에 알아보라”며 그를 다시 내보냈다. 불과 한 시간 전 위조여권으로 출국을 시도했던 자치단체장이 출국금지된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이를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월수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 총무과장은 “민 군수에게 출국 금지된 사실을 통보한 뒤 항공사 직원을 불러 출국장 밖으로 내보냈는데 출국금지자의 경우 신변을 인도하거나 관계기관 통보 등에 대한 별도의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이후 자동출입국심사등록센터에 남겨진 손모씨의 여권에 붙은 사진과 출입국 심사대에서 출국이 제지당한 인물이 동일인임을 밝혀내고 대전지검 서산지청에 민 군수의 출국 시도 사실을 통보했다. 자동출입국심사등록센터에서 곧바로 지문 채취를 했더라면 충분히 민 군수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서산지청은 25일 민 군수가 근무한 당진군의 군수실과 비서실, 민 군수의 집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서산지청은 또 민 군수에 대해 여권을 위조한 혐의(공문서 위조)를 적용해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27일 전국에 지명수배했다. 권순철 서산지청 부장검사는 “22일 수사의뢰를 받고 23일 바로 출국금지했다. 수사 과정에서 절차상 하자는 없다”고 밝혔다. 민 군수는 6·2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3선을 노리던 당진군수 예비후보 신분이었다.  

김방현 기자


당진군수, 비리확인에서 잠적까지

4월 22일 감사원, 검찰에 뇌물수수 등 혐의로 수사 의뢰(대전지검 서산지청)

4월 23일 민종기 군수와 군청 관계자 10명 출국금지 조치(오전 8시) 한나라당 민 군수 군수공천 취소

4월 24일 민 군수 위조여권으로 인천공항 무인자동출입국 사무실서 출국시도 뒤 잠적

4월 25일 민 군수 자택과 사무실 압수수색(오후 3시50분부터 3시간30분 동안)

4월 26일 민 군수 공문서(여권) 위조 혐의로 지명수배 및 체포영장 발부(오후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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