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백의 연못에 흙탕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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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준결승전 1국>
○·이창호 9단 ●·추쥔 8단

제 8 보

제8보(72∼77)=맥(脈)이란 절묘하다. 침으로 따끔하게 찔린 것뿐인데 몽둥이로 맞은 것보다 충격이 더 크다. 흑▲의 맥을 당한 이창호 9단이 지금 그런 상황이다. 흑을 넘겨준다는 것은 항복이나 마찬가지여서 일단 72로 차단한다.

여기서 흑이 ‘참고도 1’ 흑1로 막는 것은 백2의 젖힘이 좋다. 6으로 지켜 이 흑은 사망. 흑A로 막아도 백B의 치중이 있다. 하지만 추쥔 8단은 판에 머리를 쑤셔 박고 고개를 외로 꼰 특유의 자세로 판을 노려보더니 딱 소리와 함께 73으로 붙여 왔다. 순간 이창호 9단의 잔잔한 얼굴에도 오리 한 마리가 지나간 양 잔물결이 인다.

오리 한 마리라 했지만 실은 보통 일이 아니다. 잔잔한 연못이었던 좌상 귀에 오리 떼가 몰려들어 흙탕물이 솟구치는 등 난리가 났다. 이창호 9단도 상대가 73으로 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책에 부심했지만 여전히 좋은 수는 찾지 못했다. 가령 ‘참고도 2’ 백1로 막는 것은 흑2, 4로 간단히 산다. 통통한 백 집에서 흑이 살면 바둑은 끝이다. 그래서 74로 버틴 것은 절대수가 된다. 여기서부터는 외길이다. 흑은 75로 끊었고 백은 76으로 민다. 하지만 77로 뻗자 백은 다시 고통의 갈림길에 선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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