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이렇습니다] 미 금융규제법안 처리 왜 더딜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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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청문회를 하루 앞둔 26일 서류를 챙기고 있는 칼 레빈 미국 상원 조사위원장. [워싱턴 AP=연합뉴스]

미국 민주당은 26일(현지시간) 금융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의 조기 처리를 추진하다 실패했다. 그런데 하원에선 이미 지난해 말 금융규제 법안이 통과됐다. 도대체 하나의 법안에 대한 표결이 왜 이렇게 많고, 상·하원의 법은 무슨 관계가 있나.

이날 상원 표결을 한국식으로 하면 ‘상정 실패’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법안 심의를 시작할지를 결정하는 데 대한 토론을 끝내자’는 안에 대한 표결이다. 설령 민주당 뜻대로 됐다 하더라도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먼 셈이다. 이런 식의 ‘토론 종결’ 표결이 있는 것은 미 상원 의장은 발언 중인 상원 의원을 제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활용해 소수당은 종종 무한정 토론으로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필리버스터(filibuster)’ 수법을 쓴다. 이렇게 되면 의사 진행이 계속 늦어지기 때문에 의원들이 동의하면 토론을 종결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찬성표는 60표고, 상원 의원 수는 100명이다. 법안 의결에 필요한 과반수보다 많은 찬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수퍼 60석’이란 용어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곡절 끝에 상원을 통과한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은 세입·세출법안(하원)과 조약비준 동의권, 고위 공직자 인준권(상원)을 빼고는 상·하원이 대등한 권한을 갖는다. 양원에서 동일한 조문의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 지난해 12월 하원을 통과한 금융규제안과 현재 상원에서 논의 중인 법안은 내용이 다르다. 따라서 상원이 금융규제법안을 의결하면 양원협의위원회가 법안 내용을 조정하고, 이를 다시 상·하원이 각각 의결해야 한다.

전진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미국 입법 과정의 특징은 법안 처리 절차에 대한 표결이 많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처리 과정 곳곳에 법안을 사장시킬 수 있는 장치가 많다는 얘기다. 미국의 법안 가결률은 5% 안팎이다. 특히 당 중심으로 움직이는 하원과 달리 상원은 의원 개인의 결정을 중시하기 때문에 법안 처리 속도가 더 느리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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