밋밋하던 담벼락 색동옷 입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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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한국큐레이터연구소 직원들이 상암동 아트펜스를 둘러보고 있다. 아트펜스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아트피아 여행길’에 참여하면 된다.

공사장 가림막에는 물고기가 헤엄치고 학교 담벼락에는 꽃들이 피어난다. 미술작품이 거리로 나왔다.

큐레이터 설명 들으며 아트 투어 - 마포구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안에는 특별한 거리 미술관이 있다. 총 연장7.2km에 이르는 아트펜스가 그것이다. 2015년까지 조성되는 DMC 공사 예정 부지 가림막에 디자인을 입힌 작업으로, 전국 15개 예술대학 강사급 이상 작가 15명과 예술·디자인 계열 대학 졸업생 150명이 참여했다. 작업은 지난해 5월부터 6개월여에 걸쳐 진행됐다. 작품 수는 21개. 단순히 페인트로 이미지를 그려넣거나 대형 사진을 붙여 꾸미는 기존의 아트펜스와는 다르다. 나무·철·조명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가림막을 ‘예술 작품’으로 끌어올렸다. 공간은 물·불·흙·바람·빛 등 5가지 주제로 나뉜다.

하루 두 차례(오전 11시·오후 2시) 운영되는 ‘아트피아 여행길’ 프로그램(02-304-9965)에 참여하면 제각각 떨어져 있는 아트펜스를 제대로 둘러볼 수 있다. 큐레이터가 동행하면서 작가의 의도와 작품 설명, 제작에 얽힌 에피소드 등을 들려준다. 작품이 모여 있는 불-흙-물 공간 투어에는 1시간 정도 걸린다. 서울시는 지난 17일부터 아트펜스를 포함해 DMC 볼거리를 찾는 관람객들에게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주고 있다. DMC 홍보관(02-309-7067)에서 신청하면 된다.

아트펜스 총감독을 맡았던 한국큐레이터 연구소 한미애 소장은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매회 정원(1회 30명)을 넘고 있다”며 “점심시간에 커피를 들고 유유히 둘러보는 직장인부터 외국인 관광객까지 관람객이 다양하다”고 소개했다.

지역주민 손으로 꾸민 거리 - 영등포구
“매일 지나치는 길의 낡은 벽을 보면서 내 손으로 예쁘게 꾸며보고 싶었어요. 마침 벽화 그리기 사업을 한다는 소식에 당장 도전했죠.” 영등포구 당산2동 주민 송혜원(31)씨의 말이다. 당산2동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색칠한 벽화를 볼 수 있다. 주민센터, 당산역 지하철 담장, 당서초등학교 후문, 자율방범대 외벽 등 4곳이다. 지난해 7월 10일부터 9월 30일까지 진행한 ‘우리마을 가꾸기’ 사업의 하나로 조성됐다.

벽화는 장소에 맞는 주제로 그려졌다. 주민센터 1층 해바라기 그림은 ‘주민을 한결 같은 모습으로 맞이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2층은 당산동 지명의 유래가 된 당산나무·해당화와 당산동 사람들의 일상으로 꾸몄다. 지하철 담장에는 영등포구 마스코트인 영롱이와 어린이가 손을 잡은 모습을 담았다. 당서초등학교 후문에는 천사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자율방범대 외벽에는 화가 앙리 마티스의 ‘폴리네시아의 바다’를 모사했다. 주민센터 윤신섭 서무주임은 “주민들이 직접 그린 벽화여서 더욱 뜻 깊다”고 전했다.

학교 담장에 작품 걸렸네 - 고양시
고양시 행신동 무원초등학교 담장에는 아기자기한 액자 15개가 걸려 있다. 이 학교 재학생들이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하나씩 사진으로 찍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함께 담아 만든 작품이다. 원래 실물을 전시할 계획이었으나 훼손을 우려해 사진으로 대체했다. 값비싼 명품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 물건 들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전시회다. 학교옆 무원로에도 오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 조형물이 있다. 살짝 휜 기둥 5개가 서로 머리를 맞댄형상으로, 기둥을 칭칭 감은 나일론 끈에 알록달록 색을 칠해 마치 털실을 감아놓은 듯하다. 니트 직물과 털실뭉치 패턴을 재해석해 디자인한 벤치도 한켠에 놓여 있다. 이곳 거리 미술은 고양문화재단이 지난해 말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행신동 지역민을 연계해 진행한 공공미술 ‘무원연가’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프로젝트를 맡은 공공미술 프리즘의 전유나 실장은 “날실과 씨실이 서로 교차하는 뜨개질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이웃과 이웃간의 소통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인근 용현초등학교 담벼락에도 작품이 있다. 2006년 이 학교 재학생 30여 명이 ‘꽃’을 주제로 상상력을 발휘해 제작한 16점이다. 철제 담장에 무궁화·민들레·붓꽃 등의 그림이 걸려 있다.

희망을 거리 벽화에 담아 - 성남시
성남시 분당구 야탑1동 여수천 안 산책로가‘이야기가 있는 주민 쉼터’로 변했다. 장미마을 아파트 806동과 831동 앞 주민 쉼터 2곳의 뒷벽에 옹벽(축대 담장) 벽화(사진아래)를 조성한 것이다. 이는 지난 3월 한 달간 희망근로사업으로 이뤄졌다. 벽화는 마을 이름에 걸맞게 장미꽃을 모티프로 했다. 다른 한 곳은 곰·무당벌레 등으로 자연친화적인 느낌을 줬다. 밑그림을 그리면 타일을 붙이는 일은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다. 색상이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것도 장점이다. 오염 시 물 세척이 가능해 유지보수도 쉽다. 벽화는 참가자 들의 의견을 모아 ‘희망의 벽화’라고 이름 지었다. 희망근로자로 참여했던 김재석(43)씨는“모자이크처럼 하나씩 붙이면서 희망의 조각을 붙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성남시 수정구 태평3동도 지난해 9~10월 희망근로사업의 일환으로 거리 벽화를 만들었다. 작업은 하루에 희망근로자 10명씩 총 140명이 참여했다. 벽화는 성남서초등학교에서 배수지 녹지에 걸쳐 있는 담장(156㎡)에 그렸다. 아이들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동화적 그림으로, 간결하고 친근한 디자인을 택했다. 파스텔톤 색상으로 시각적 피로도 줄였다. 태평3동 전동환 동장은 “기존 낡은 콘크리트 담장에 벽화를 그려 넣어 주민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설명]분당구 야탑 1동 여수천 안 산책로의 희망의 벽화.

< 김은정·신수연 기자 hapia@joongang.co.kr / 사진=최명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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