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필사의 목조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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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8강전
[제6보 (84~102)]
黑. 최철한 9단 白.구리 7단

'공배'란 아무것도 아니다. 현실적 가치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공배는 돌(石)을 숨 쉬게 만든다. 돌은 앞뒤의 공배가 꽉 막히면 비로소 사망하고 배후의 공배만 꽉 막혀도 곧장 숨이 막히고 운신이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고수들은 당연히 자신의 목을 조르는 공배 메움을 극도로 피한다.

그런데 이 판에선 정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기세가 치열하게 맞부딪치면서 두 사람이 파탄을 각오한 필사의 '목조르기'에 들어간 것이다.

구리7단은 84로 움직여 92까지 커다란 실리를 움켜쥐었다. 흑의 최철한9단은 물론 전보 흑▲를 둘 때 이 같은 피해를 각오하고 있었다. 그의 목적은 93, 95로 백△ 6점을 잡아버리겠다는 것이다. 가만히 보면 이 6점은 뒷공배가 하나도 없어 도무지 행마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85쪽의 흑 4점도 뒤가 꽉 막힌 단수의 형태라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상황이다. 이 약점을 어떻게든 노리려면 백△ 6점을 꼭 살려야 하는데, 이 6점은 걷기는커녕 일어서기도 힘든 상태이고, 그냥 놔두면 A의 한 수로 죽어버린다.

구리가 96에 붙인 다음 98로 뚝 끊었을 때 검토실에선 아! 하는 작은 탄성이 퍼져나갔다. 풀리지 않는 난제를 놔둔 채 그는 또 다른 곳에 불을 지르고 있다. 진퇴양난의 처지에서 그가 또 다른 모험을 시도한 것은 중앙과 하변을 극적으로 연계시켜 타협 카드를 만들려는 것이다.

하지만 실리를 이미 크게 내준 흑은 타협을 성사시켜줄 수 없다. 구리가 100으로 밀자(이미 귀의 실리 정도는 소소하다) 최철한은 101로 두점머리를 거세게 젖혀 올린다. 곧이어 102의 절단….

흑백의 돌 4개가 서로 공배가 꽉 막힌 채 얽혀 있는 모습이 필사의 목조르기에 나선 두 사람의 검투사를 보는 듯하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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