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멕시코가 최고 맹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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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비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이 5일 이틀간의 미국 국빈방문을 시작했다.

'가을 외교' 를 개시하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멕시코를 미국의 최고 맹방으로 치켜세우며 폭스의 방미를 화려한 이벤트로 만들었다. 세계는 미-멕시코 유대를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양국의 요란한 몸짓 뒤에는 미국에 있는 수백만명의 멕시코 불법 이민자라는 골치 아픈 갈등이 있다.

◇ 맹방관계 과시=멕시코는 부시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한 후 처음으로 방문한 나라였다. 폭스 대통령은 부시 취임 이래 미국을 첫 국빈방문하는 손님이다. 부시는 최고의 예우를 선사했다. 이날 백악관 공식 환영식, 두 정상의 단독회동, 이례적인 양국 각료합동회의, 국빈만찬이 이어졌고 백악관 남쪽 잔디밭 불꽃놀이가 피날레를 장식했다.

부시 대통령은 환영행사에서 "미국이 세계에서 멕시코 보다 더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없다" 고 선언했다. '우방' 이란 단어를 제치고 최고의 헌사를 쓴 것이다. 영국.캐나다.호주, 그리고 일본.한국 등은 제2선으로 밀린 셈이다. 특히 한.미관계는 갈등국면에 들어가 있다.

영국신문 데일리 텔레그라프는 "군과 의회의 대다수는 아직도 영국을 미국의 주(主)우방이라고 여기지만 백악관은 영국이 단지 여러 우방 중 하나라는 것을 이번에 분명히 했다" 고 해석했다.

부시 대통령은 원래 외국지도자에 대한 감성적 표현으로 유명하지만 멕시코에 대한 헌사는 정치적 배경.목표와 관련이 있다. 부시 대통령은 멕시코와 9백마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텍사스주의 지사를 지냈으며 멕시코 지도자들과 교류가 깊다.

부시 대통령의 동생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의 부인은 멕시코 출신이며 부시의 혼혈 조카는 히스패닉계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지난해 대선 때 기적적으로 신승한 부시 대통령이 2004년 대선에서 재선되기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히스패닉계의 표가 절실하다고 참모들은 분석한다.

◇ 멕시코 불법 이민자 현안=답사에서 폭스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3백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불법 멕시코 이민자 문제를 치고 나왔다. 대선 때 이의 해결을 공약한 그는 "이들에게 합법 지위를 부여하는 이민협정이 연내에 체결돼야 한다" 고 주장했다. 미국에 불법 입국하려는 멕시코 노동자들의 문제는 멕시코의 중요한 국가 현안이다.

미국에 들어가려다 국경지대 사막에서 쓰러져 죽는 비극성, 미국에 들어간 후 겪는 저임.학대.추방공포에다 이민자들이 국내에 보내는 송금 등의 경제적 이해까지 얽혀있다. 폭스 대통령은 이미 불법으로 체류 중인 멕시코인이 합법 지위를 얻는 것뿐 아니라 불법이민을 꿈꾸는 수백만명이 합법적인 방법으로 미국에 들어갈 수 있는 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 정권은 역사적으로 불법이민에 강경한 입장이어서 부시로서도 밀어붙일 수가 없다. 이날 공화당의 이민개혁 위원장을 맡고 있는 톰 탠크레도 하원의원은 "미국법을 어기고 잠입한 사람들이 보상을 받아서는 안된다" 고 경고했다.

부시 대통령과 백악관 참모들은 이 문제가 중요하기는 하나 폭스 대통령의 요구처럼 연내에 해결책이 만들어 질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 국빈만찬 뒷얘기

부시 미국 대통령이 폭스 멕시코 대통령을 위해 5일 베푼 만찬에 초대받기가 '하늘의 별따기' 처럼 어려웠기 때문에 화제가 만발했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워싱턴에 온 외국 지도자는 공식 또는 실무방문만 했고 국빈방문은 폭스 대통령이 처음이라 워싱턴 사교계가 '모처럼의 기회' 를 잡아 자신들의 위상을 반영하려고 모두 설치고 나섰던 것이다. 하지만 만찬장소에 들어가는 것은 정말로 어려웠다는 후문이다.

만찬장소가 백악관의 여러 식당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은 국빈 만찬장이라 좌석이 겨우 1백36석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백악관 의전관계자는 장소가 좁아 양국 대통령 내외와 꼭 참석해야 하는 양국 정부 관계자들을 제외하면 1백석 정도밖에 여유가 없다며 장소를 백악관 동관의 2백60석짜리 대형 식당이나 남쪽 잔디밭으로 옮기도록 권유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친밀하고 장중한 분위기' 가 중요하다며 이곳을 고집해 파티족들간에 초청장을 얻기 위한 엄청난 경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폭스 대통령을 수행한 멕시코 각료 중 상당수도 '초대받지 못한 손님' 이 됐다.

특히 폭스 대통령의 부인 마르타 사아군 여사도 실무작업 당시엔 공보비서였기 때문에 처음엔 참석자에서 제외됐다가 7월 2일 결혼식을 올린 뒤 새롭게 작성한 정식 초청자 명단에 올랐다고 한다.

한편 이날 만찬 참석자에는 필 그램 상원의원과 케이 허치슨 상원의원, 헨리 보니야 하원의원(이상 공화) 등 텍사스 출신이 많아 부시 대통령의 '고향배려' 가 두드러졌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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