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 컬렉션] 사티의 피아노곡 '짐노페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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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느린 왈츠풍의 리듬, 금방이라도 흥얼거릴 수 있는 명쾌한 선율, 가을 하늘처럼 군더더기 없이 청명한 화음….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1866~1925)가 남긴 50여편의 피아노 소품들은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청량감을 선사해준다.

사티의 피아노곡 중에서도 대표작인 '3개의 짐노페디' 는 청정지대에서 길어 올린 맑은 샘물처럼 세속의 때가 묻지 않고 투명하다.

현란한 기교와 숭고하고 장엄한 분위기만을 음악의 미덕으로 삼던 시류에 반기를 든 그의 음악은 한마디로 솔직담백하다. 멜랑콜릭한 부분이나 밝고 쾌활한 악절이 모두 그렇다.

짐노페디는 고대 스파르타의 연례 행사의 하나로 트로이 전투에서 희생된 병사들을 추모하는 축제다. 사티의 '짐노페디' 는 나체의 젊은이들이 합창과 정적인 군무로 신을 찬양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은 기타.아코디언.색소폰 등으로 편곡돼 연주되는 제1번이다. 영화와 CF의 배경음악으로 등장했다.

사티의 친구 드뷔시는 '짐노페디' 의 제1번과 제3번을 관현악으로 편곡했다. 사티의 피아노곡은 그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파리 몽마르트르의 카페 '검은 고양이' '클루' 에서 손님들을 위해 연주했던 살롱음악이다.

사티 특유의 유머 감각과 풍자는 드뷔시.라벨.풀랑.미요.케이지에게 영향을 주었다. '짐노페디' 가 너무 단조롭다면 동양적 신비와 몽상적 분위기가 가미된 '6개의 그노시엔' 을 권한다.

프랑스 피아니스트 파스칼 로제(50)는 1984년 후안 미로의 '어릿광대의 카니발' 을 커버 그림으로 내세운 사티 피아노곡집을 내놓았다. 단순 명쾌한 선율 속에 담긴 복잡 미묘한 울림을 잘 표현해낸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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