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극동지역 국경, 중국이 잠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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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국이 '인해전술' 로 국경을 맞댄 러시아 극동지역을 야금야금 먹어들어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최근 이 지역에 중국인 불법 이민자가 증가하면서 이 지역이 자연스럽게 중국의 영향권에 편입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영토이지만 중국인이 상권을 장악하는 바람에 중국경제권에 속하게 된 도시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지역이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을 이루는 아무르강의 북쪽 도시 블라고베시첸스크다.

오죽하면 지난해 이곳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주민들에게 "뭔가 실용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수십년 내에 당신들(러시아 사람들)이 중국말을 사용하게 될 지도 모른다" 고 경고했을 정도다.

◇ 중국 인구 유입=인구 20여만명인 블라고베시첸스크에 살고 있는 중국인의 숫자는 공식적으론 6천여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경찰은 실제 중국인 체류자수가 2만명은 족히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법률상 중국인은 이 지역에 정착할 수 없다.

하지만 30일간 방문은 무제한 허용한다는 허점을 이용해 블라고베시첸스크 건너편에 있는 중국측 국경도시 하이허(黑河)에서 넘어와 불법 체류하는 중국인이 10~20여년 전부터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 개척자가 주인=러시아 입장에서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단순한 중국인의 유입 자체가 아니라 이들이 미개척지나 다름 없는 이 지역의 땅과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19세기에 아무르강 북쪽에 정착한 러시아 초기 이주민들은 임금이 싼 중국인.한국인을 고용해 땅을 개간했으나 지금은 정반대로 무역업을 하는 중국 상인들이 싼 임금의 러시아인을 고용하고 있다.

◇ 러시아의 우려=블라고베시첸스크는 모스크바에서 3천4백㎞나 떨어져 있으나 모스크바만큼 규모가 큰 중국 도시인 하얼빈과의 거리는 수백㎞에 불과할 뿐 아니라 교통편도 좋아 중국의 영향을 받기가 쉽다.

또 아무르강 북쪽의 러시아 인구는 1백만명에 불과하지만 강 남쪽 헤이룽장(黑龍江)성의 중국 인구는 3천8백만명이나 된다. 지리적으로나 경제.인구적으로나 중국화의 가능성이 큰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는 이 지역의 통제권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 국경 분쟁사=아무르강 북쪽이 러시아땅이 된 것은 1858년 당시 중국 청나라와 러시아가 아이훈조약을 맺은 이후다.

중국은 이 협정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1960~80년대 국경분쟁을 자주 일으켰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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