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1. 샛강<3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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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그는 아이들을 불러모아 마당의 언 땅을 파고 김장독을 묻듯이 홑이불에 싼 할머니를 묻었다. 사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는 가혹한 세월이 되어도 겉으로는 별로 무서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저희 패거리와 함께 있는 전쟁터의 아이들은 희희낙락하며 즐거워 보이기까지 한다. 어쨌든 놀거리가 생기고 굶어 죽지만 않는다면 학교에 나가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일이 얼마든지 많다. 배고프고 아프고 슬프면 바로 그때에 잠깐 울다가 그치면 그만이다. 얼룩진 눈시울을 쓱 닦고 돌아서면 그래, 생존하는 나날 자체가 활기인 것이다. 그렇지만 모르는 사이에 동상에 걸린 것처럼 상처받았던 부분들이 성장해 가면서 세상에 적응해 가는 동안에 못 견디게 가려워지기 시작한다. 이것은 젊은 병사들도 마찬가지여서 나와 함께 월남전을 겪고 돌아온 전우들의 경우에도 그랬다. 혹독한 보병 시절을 겪은 젊은이가 뒤에 낱알처럼 무수히 남은 일상 속에서 서서히 무너지던 것을 보았다.'세월에 장사 없다'는 옛말은 그럴듯하다.

대구역에 도착한 것은 이미 짧은 겨울해가 저문 뒤였다. 우리 식구가 남들처럼 부산까지 내려가지 않은 것은 역시 어머니의 주장이었을 것이다. 그녀 생각에는 남한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들과 이북의 피란민들까지 부산에 넘칠 텐데 살기가 여간 힘들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방 구하기도 쉽지 않고 생존경쟁이 그만큼 치열할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그리 쉽사리 추풍령 너머까지 밀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던 것이다. 역에 도착해서 인파에 묻혀버리지 않도록 우리는 수화물 사무실이 있는 유리창 앞에까지 뒤로 물러나서 짐을 내려놓고 앉아서 아버지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버지는 시내로 방을 구하러 역 구내를 빠져나갔던 것이다.

우리 앞으로 군인들과 피란민의 인파가 하염없이 스치고 지나갔다. 누군가 내 앞에 서더니 뭐라고 말을 걸었다. 그것은 털북숭이의 손을 가진 한 뚱뚱한 미군이었다. 그가 뭐라고 일본어로 말을 걸자 어머니가 대답했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일본에 있는 자기 아이만하다는 것이었다. 그가 짊어지고 있던 기다란 카키색의 자루 속에 손을 집어넣고 한참 휘젓더니 상자 하나를 꺼내어 내밀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머니에게 잘 단련된 나는 그맘때에 동네의 한길을 지나치던 트럭에서 미군 병사들이 아이들을 향하여 껌이며 초콜릿을 던지고 갈 적에 한 번도 서슴없이 아이들 틈에 끼여서 줍거나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랬다가는 어머니의 매운 회초리 맛을 보아야 했을 것이다. 돌아보는 나에게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 고맙습니다, 하고 받으렴.

나는 학교에서처럼 인사를 하고 고맙습니다를 말하고 상자를 받았다. 미군은 내 머리를 손으로 흐트러뜨려 놓고는 뭐라고 다시 말하고 가버렸다. 누나들과 다투어 가며 뜯어보니 그것은 미군의 야전 식량으로 한 끼분이었다. 나중에 우리는 여러 번 그런 것이 여러 개 들어있는 커다란 시레이션 상자를 암시장에서 구해다 먹기도 했다. 어머니가 일일이 깡통을 따고 안에 들어있는 비스킷이며 잼이며 초콜릿이며 햄과 과일 등속을 나누어 주었다.

그림=민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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