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라 바이올린 독주회 21일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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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뉴욕 링컨센터 내 줄리어드 음대 530호.오후 3시쯤 휠체어를 탄 할머니가 학생의 손을 잡고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리고선 밤 10∼11시까지,화장실 가는 시간만 빼놓고는 레슨에 매달린다.저녁은 브로드웨이 건너 단골 중국집 ‘션 리 팰러스’에 배달을 시켜 해결한다.

그 할머니가 세계 음악무대에 바이올리니스트를‘공급’하는 명교수 도로시 딜레이(84)다.

지금 레슨은 그래도 약과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오전 1~2시까지 강행군을 한 뒤에 집으로 향했다.

1948년 줄리아드 음대 교수로 부임한 이래 53년간 배출해낸 숱한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국인 몇 명만 이름을 들어보자. 장영주.장민수(장영주의 아버지).최민재(중앙대 교수).강효(줄리아드 음대 교수).임원빈(신시내티 음대.줄리아드 예비학교 교수).이성주(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데이비드 김(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악장).김복수(KBS교향악단 악장).캐서린 조(줄리아드 예비학교 교수).배익환.김지연….

그는 세계 바이올린계의 '막후 실세' 다. 그의 말 한 마디에 세계적인 지휘자.매니저들이 움직인다. 하지만 행여나 제자들이 무리한 연주 일정에 혹사당할까봐 매니저와 맞서 싸우는 것도 그의 몫이다. 전세계 음악가.매니저들의 필독서인 음악연감 '2001 뮤지컬 아메리카' 가 그를 '올해의 음악교육가' 로 지목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딜레이가 미도리.장영주를 이을 바이올리니스트로 아껴둔 이유라(16)가 고국 무대에 선다. 오는 21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와 24일 부산문화회관에서 로버트 코닉의 피아노 반주로 리사이틀을 꾸미는 것.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 , 라벨의 '소나타' , 왁스만의 '카르멘 환상곡' 등을 들려준다. 지난해 12월 금호갤러리(2백석)에 잠시 들러 조촐하게 연주했지만 대형 무대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이유라는 4살때 바이올린을 시작, 김남윤 교수를 사사했다. 그가 가족(병리학교수인 아버지, 고교교사 출신인 어머니와 지금 7살인 여동생)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9살때. 이후 그는 딜레이의 '조련' 을 받으며 대형 연주자의 발판을 닦아왔다. 미국으로 건너가던 해인 94년 미국 공영방송 연합회인 NPR이 선정한 신인 연주자상을 수상했고, 독일 ZDF TV가 제작한 '천재 신드롬' 에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 장영주와 함께 소개됐다.

또 11세 때는 아이작 스턴.이츠하크 펄먼.장영주.미도리 등이 소속된 세계적인 매니지먼트사 ICM과 전속 계약을 했다. 이 회사 사상 최연소 전속계약이었다. 딜레이의 힘은 여기서도 나타나는데 ICM 소속 16명의 바이올리니스트중 10명이 그의 제자들이다.

약간 작은(8분의 7 크기) 니콜로 아마티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이유라는 지난해 1월 슬래트킨 지휘의 내셔널심포니와 카네기홀에 데뷔,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1악장이 끝난 후 이례적으로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정경화.김지연.장영주로 이어지는 '현악 강국' 코리아를 이끌고 갈 확실한 재목으로 성장한 이유라의 본격적인 국내 데뷔가 기대된다. 02-2005-0114.

이장직 음악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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