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면서 떠오르는 것이 있다. MP3 플레이어(MP3P)로 세계적 벤처업체 대열에 올라 미국 애플과 정면대결을 펼치다 몰락한 ‘레인콤 신화’다. 양덕준 사장(현 민트패스 사장)이 1999년 설립한 레인콤(현 아이리버)은 2001년 MP3P를 세계 시장에 처음 선보여 젊은이의 음악문화 코드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애플 신화’의 첫 단추인 아이팟보다 앞서 성공을 만방에 고한 기업이었다. 그러다 거인 애플과 무리한 승부를 벌인 것이 화근이 돼 2005년부터 3년간 적자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마침내 2007년 국내 보고펀드에 회사를 넘겨야 했다.
아이리버는 ‘레인콤의 부활’을 외치며 올 들어 전자사전(승호딕플)과 전자책(스토리) 사업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다. 공교롭게도 두 시장은 또다시 애플과의 싸움이다. 애플이 이달 초 출시한 아이패드는 두 시장을 모두 겨냥한, 강력한 태블릿PC다. 아이리버가 완전히 재기하려면 기억하기 싫은 애플과의 ‘악연’을 떨쳐내야 한다. 고성능 무선인터넷과 콘텐트를 자랑하는 아이패드에 또다시 덤빌 것인가. 다루기 쉽고 독특한 문화코드를 입힌 아이리버만의 특색을 살려야 시장에서 먹힌다.
승호딕플은 그런 고민을 한 흔적이 엿보인다. 다양한 첨단 기능을 입히기보다 전자사전에 충실하면서 쓰기 쉽게 만들었다. 영어·중국어·일어·불어·독어 외에 국내 처음으로 스페인어를 담았고, ‘YBM 스프링 북 시리즈’ 등 풍부한 회화 학습자료가 들어 있다.
성능도 첨단 3세대 이동통신 인터넷을 탑재하기보다 이용자가 쓰기 쉽도록 아이리버만의 사용자환경(UI)을 내장했다. 메인 바탕화면의 위쪽에 검색창이 달려있어 원하는 단어를 한 번에 찾고, 뜻풀이·예문 등 검색 콘텐트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종전엔 단어를 검색할 때마다 여러 단계를 거치는 불편이 있었다. 인터넷 연결은 와이파이(근거리무선망) 기능만으로 해결했다.
일단 초기 시장에서는 통했다. ‘공부의 신’의 주연인 유승호를 광고모델로 내세운 김에 제품명까지 D1000에서 승호딕플로 바꾼 것도 주효했다. 드라마를 많이 본 10대 청소년이 승호딕플에 깊은 인상을 가진 것이다. 한 달간 예약 판매물량 1만 대가 동났고, 이달 들어 1주일간 1만 대가 팔렸다. 승호딕플과 스토리가 아이리버 부활의 신호탄이 될지 주목된다.
이원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