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에 특혜 주고 별장·아파트 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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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감사원은 2월부터 지역 토착비리 감찰을 벌인 결과 일부 기초단체장이 건설업체로부터 별장·아파트를 뇌물로 받고,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건설사에 거액의 공사를 불법으로 맡긴 혐의를 찾아냈다고 22일 밝혔다. 감사원은 민종기 당진군수 등 기초단체장 3명과 지방공기업 사장 1명 등 30명을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김영호 감사원 특별조사국장은 “기초단체 4곳을 대상으로 감사를 한 결과 4곳 모두에서 비리가 적발됐다”고 말했다. 토착비리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얘기다.

22일 오후 국회 법사위(위원장 유선호 민주당 의원) 전체회의가 한나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이른바 ‘스폰서 검사’ 문제와 관련, 민주당 측은 이귀남법무부 장관의 출석을 요구했으나 한나라당 측은 간사 간 사전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김형수 기자]

◆토착비리 백태=이번 감사는 ‘토착비리 척결’을 강조해온 현 정부 방침과 맞물려 속전속결식으로 진행됐다. “지방선거 일정 등을 감안해 비리 첩보가 입수된 곳을 우선 대상으로 삼았다”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민 군수는 관내 공사 7건(102억원)을 수주한 C사 사장으로부터 3억원 상당의 별장(지상 2층, 233㎡)을 뇌물로 받았다. 아파트 건축 특혜를 준 H사로부터 하도급 업체를 통해 아파트 1채(3억여원 상당)를 받은 혐의도 드러났다. 민 군수는 뇌물로 받은 별장을 자신의 형 명의로 건축 허가를 낸 뒤 C사가 형에게 현금을 주고 형이 C사 계좌로 이 돈을 입금시켜 마치 건축대금을 정상 지급한 것처럼 꾸몄다. 그러나 건설회사 측이 형에게 5만원짜리 돈뭉치 5000만원을 건네는 장면이 금융기관의 폐쇄회로(CC)TV에 찍히는 바람에 뇌물수수 사실이 들통났다.

권영택 영양군수는 자신과 장인이 지분 50%를 갖고 있는 T건설사에 27건(30억원)의 공사를 불법 수의계약하도록 했다. T사는 이 대가로 권 군수 부인 계좌에 2억5000만원을 입금시켰다. 감사원은 “이 돈은 군수 부인이 운영하는 스크린골프장 시설비로 사용됐다”고 밝혔다.

인사비리도 빠지지 않았다. 경기도의 한 기초단체장은 2008년 4월 인사위원회에서 승진 탈락한 직원 J씨를 인사위원회를 다시 열도록 해 승진시키고 이미 내정됐던 승진 예정자를 떨어뜨렸다. 조사 결과 J씨는 지역 유력 인사인 S씨를 통해 단체장에게 인사 청탁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 측은 “S씨는 지방선거에서 자신이 득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인사청탁을 했다”고 밝혔다. 한 단체장은 내연 관계인 부하 여직원에게 아파트를 사주고 10억원대의 비자금을 관리시킨 의혹이 포착되기도 했다.

◆6·2 지방선거 여당 후보 내정자도=감사원 측은 “자치단체장은 4년 임기가 보장되고 예산·허가·인사권, 개발사업 승인권 등을 갖고 있어 지역에서 제왕적인 존재”라며 “그러다 보니 당선 후 6개월이면 관내를 장악하게 돼 감사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에선 이번 감사를 피하기 위해 담당 공무원을 연가 조치하고, 민간인들을 해외로 내보냈다. 그럼에도 민 군수와 권 군수는 6·2 지방선거에 출마할 한나라당 후보에 내정되는 등 정당 내부의 견제장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그러나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선거가 끝난 뒤 감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글=강주안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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