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칼럼] 아프리카에서 온 여인 ‘와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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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요즘 우리사회에 아프리카 바람이 불고 있다. 전에 없던 현상은 우선 아프리카 관련 책으로 나타난다. 얼마 전부터 『처음 읽는 아프리카 역사』(루츠 판 다이크), 『헉 아프리카(Hug Africa)』(김영희) 등과 함께 『사막의 꽃』(와리스 디리)이 베스트셀러를 장식했다. 긴급구호팀장 한비야가 아프리카 추천서로 꼽은 책들이다.

아프리카 붐에는 MBC-TV도 합류했다. 주말 저녁 시간대 아프리카 오지에 우물을 파주는 내용의 새로운 시도다. 그랬더니 이번 주에는 아프리카 여성을 소재로 한 영화 ‘데저트 플라워’도 개봉했다. 만사 제치고 시사회장을 찾았다. 5년 전 읽은 『사막의 꽃』을 영화로 만든 이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다.

묘했다. 소말리아 유목민의 딸 와리스 디리가 패션계 신데렐라로 뜨는 과정을 담은 이 작품은 극적인 인생역전 스토리에도 마음 무겁다. 이야기는 열세 살 와리스가 집을 뛰쳐나오는 걸로 시작한다. 낯선 노인에게 시집가야 하는 참담한 현실을 박찬 것인데, 말 그대로 천신만고 끝에 영국 소말리아 대사관 가정부로 일하게 된다. 운명은 가혹했다. 조국의 내전에 따라 불법체류자에 노숙자로 전락한 그가 남의 눈을 피해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이라니…. 그러다가 한 사진작가 눈에 띄어 패션모델로 뜬다. 거짓말 같은 실화다.

‘데저트 플라워’는 할리우드식의 뽀얀 화면과 다르다. 격렬한 고발의 메시지 때문인지 다큐영화를 닮기도 했다. 포인트는 와리스가 받았던 여성할례(성기 훼손수술)다. 전통의 이름으로 지구촌 1억3000만 명이 할례의 위협 아래 놓여있다고 한다. 시사회장은 90%가 여성이었다. 그들의 마음은 더했으리라. 와리스가 유엔 특별대사로 활약하고 있다는 게 다소 위안일까? 그러나 ‘데저트 플라워’를 포함한 아프리카 이야기는 역경을 이긴 아프리카 여인의 스토리로 그치면 안 된다.

뉴스위크 최신호에 따르면 아프리카는 ‘제2의 아시아’로 올해 성장률이 4.8%, 아시아를 제외하면 단연 세계 최고란다. 그러저런 이유로 아프리카 붐이 반짝할 수만은 없다. 소말리아·케냐·이디오피아보다 못한 나라에서 반세기만에 훌쩍 큰 한국의 과거와 오늘도 비춰볼 일이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기회에 아프리카를, 세계를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훈련이 아닐까 싶다. 서구 문화상품(영화·책)을 통해 곁눈질하는 건 어차피 한계가 있다. 기회에 왜 이웃 중국이 버려진 대륙이 가진 잠재력에 주목해 오래 전부터 전략적 접근과 투자를 계속하는지도 새겨볼 일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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