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천사 정혜영과 중세 도시 프라하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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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나눔으로 세상을 밝히는 배우 정혜영과의 체코 기행. 옛 시간에 머물러 있는 도시 프라하와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정혜영은 나눔과 가족, 행복에 대한 얘기들을 들려주었다.

적당히 낭만적이고 적당히 아담한 프라하. 정혜영에게 프라하는 ‘최고로 예쁜 도시’로 기억되는 곳이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 세계 곳곳 꽤 많은 도시들을 둘러보았다는 그녀는 3년 전 체코에 처음 와서 그림 같은 풍경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둘째 하랑이 낳고 4개월쯤 지난 때였어요. 남편이 애 둘 낳고 키우느라 수고했다고 자기가 애들을 보고 있을 테니 여행 다녀오라며 보내준 곳이 이곳 프라하였죠.”

여행 첫날, 물빛 도시 프라하 곳곳을 둘러보았다. 구시가지 광장에 마침 펼쳐진 ‘부활절 기념’ 축제를 함께하고(프라하는 축제의 도시다. 4월 부활절 축제가 지나면 5월엔 화려한 음악 축제가 도시 전체에서 열린다) 관광객들로 가득한 카를 다리를 천천히 걸었다. 노천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는 파리의 낭만이 부럽지 않았다.

프라하는 자그마한 도시다. 관광객은 많아도 서울 같은 번잡함은 없다. 여행자의 시선에 따라 한 달을 머물러도 좋을 수 있겠으나 ‘꼭 가볼 리스트’만을 꼽아 발길을 주자면 3일만 둘러봐도 충분할 수 있다. 그렇게 아담해서일까. 딱 하룻밤을 지냈을 뿐인데 도시가 품에 폭 안기듯 정답게 느껴진다.

남편 션이 사주었다는 스타일리시한 레인 부츠를 신고 프라하 시내를 거니는 그녀를 보면, ‘아이 셋의 엄마’라는 말이 화려한 수식어처럼 느껴진다(남편은 정혜영의 사이즈를 다 외우고 있어 종종 예쁜 신발과 옷들을 사들고 들어오는데 그 감각이 감탄스러울 정도라고). 션과 정혜영 부부는 노상 신혼처럼 어찌나 정다운지 이들을 본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결혼하고픈’ 욕심을 갖게 된다. 아이가 생기면 곧장 넷째를 낳겠다는 말에서는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피곤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세 아이를 먹이고 치우다 보면 숨이 막히기도 하지만 크게 불만은 없다. “네가 행복해야 아이들에게도 기쁜 마음으로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다”면서 남편은 육아에 지칠 수도 있는 아내에게 종종 ‘자유 시간’을 내어준다.

세상을 바꾸는 이 부부의 나눔 이야기

정혜영에게 선행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고 삶의 목적을 바꾸게 해준 사람은 남편 션이다. ‘좋은 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남편의 본격적인 제안(?)은 결혼식 당일 식을 마치자마자 시작되었지만, 결혼 전 그녀는 어렴풋이 ‘이 남자와 결혼한 후 지금처럼 이렇게 늘 남을 위하는 데만 돈을 쓰면 어쩌지?’ 하는 염려가 조금은 있었단다. 그럴 만큼 자신도 평범했다는 얘기다.

결혼식 직후 남편은 “우리가 오늘 받은 축복을 이대로 끝낼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 나누자”는 제안을 하며 흰 봉투를 꺼냈다. 하루 1만원씩 저금해서 매년 365만원을 모아 결혼기념일에 무료 급식 나눔 운동에 기부하고 봉사하는 그들의 유명한 ‘밥퍼’ 나눔 활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

정혜영과 션 부부는 흔한 돌잔치도 돌잡이 이벤트도 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의 돌잔치 예상 비용을 고스란히 아픈 아이들을 살리는 수술에 썼다. 지금도 매년 아이의 생일이면 일 년 동안 저금한 365만원을 어린아이들의 청력을 살려주는 인공 와우 수술비로 기부한다. 아이들이 돈을 벌기 전까지는 엄마 아빠가 대신 매년 세 아이의 이름으로 아픈 아이들을 도울 것이다. 아이들이 글씨를 쓸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면 베푸는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성인이 되어 돈을 벌게 되면 직접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저금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싶단다. “엄마, 나는 돌잡이 때 뭐 잡았어요?”라고 묻는다면 “너희들은 이웃의 손을 잡았단다”라고 말해 주고 싶다는 게 세 아이 엄마 정혜영의 바람이다.

결혼식 당일 1만원으로 시작한 기부. 이제는 나눔의 규모가 한 달 평균 2000만원이 될 만큼 확장되었고, 계속 퍼서 써도 계속 채워지는 항아리를 가진 듯 작년 한 해에만 4억5000만원을 기부했다. 이들 부부는 이런 기부가 가능했던 것에 대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알려진 대로 이들 부부에겐 집이 없다. 여전히 전셋집에 사는지 묻자 집을 안 사겠다는 것은 아니고 때가 되면 주실 거라고 믿는단다. 세 아이의 이름으로 하는 365만원의 저축 외에는 연금, 적금, 보험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지금도 남편은 CF 모델비 등으로 큰돈이 들어오면 좋은 데 쓰자고 제안을 한다. “제가 가끔은 브레이크를 걸어야 해요(웃음). 생각해 보고 이번엔 안 되겠다고 하면 남편은 바로 받아들여요. ‘혜영이 네가 원치 않으면 안 한다’고, ‘마음에 조금이라도 거리낌이 있다면 안 하는 것이 맞다’면서요. 생각 끝에 제가 또 기부를 하자고 하면 남편은 곧바로 천국을 다녀온 사람의 얼굴이 돼요. 정말, 남 돕는 것을 저렇게까지 좋아할까 싶을 정도로요. 아, 이 남자는 대단하구나, 늘 생각하죠.”

남편과 함께 좋은 일을 도모하고 실천하자 정혜영의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돈으로 미래를 준비하지 않아도 앞일에 대한 걱정이 없단다.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 그럴 만큼의 울림을 갖는다는 것. 정혜영 부부를 보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된 명제다. 사람들은 대단스럽거나 소소하거나 ‘변화’라는 화두를 갖고 살지만, 어떤 계기로든 대체로 변하지 않는 게 사람이다. 이들 부부의 선행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이 되었다. 입양과 기부와 봉사. 화려한 셀렙 부부의 선행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넘어 분명 세상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획_안지선 기자 사진_조세현(icon studio)

<여성중앙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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