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권 왜 자중지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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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국정 쇄신을 미루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항공 안전 2등급 판정, 8.15 통일대축전 파문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정부의 안이한 대응과 졸속 판단, 미숙한 정책 결정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더니 이제는 여권 내 자중지란(自中之亂)까지 벌어지고 있다.

칭병(稱病)을 이유로 한 민주당 김중권(金重權)대표의 한때 당무 거부는 국정 관리의 난맥상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金대표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서울 구로을 재선거 출마 문제를 놓고 벌이는 청와대와 민주당간의 권력갈등 양상이 드러난다.

그렇지만 우리의 관심은 그런 측면보다 金대표가 자신을 포함한 당정 개편 등 바닥에 떨어진 민심을 휘어잡을 수 있는 수습책을 지난주에 金대통령에게 건의했다는 대목이다. 그동안 민심 이반(離反)의 정도와 국정 개선 방향을 놓고 청와대와 민주당은 인식과 접근자세.해법에서 심각한 차이점을 노출해 왔다.

지난주 8.15 대축전과 관련한 임동원(林東源)통일부 장관의 문책론을 놓고 민주당이 당무위원 일부가 책임 문제를 거론한 것을 당 입장이라고 발표했다가 이를 번복한 것도 그런 사례의 하나다.

金대표 주변 등 민주당 내부에서는 청와대 참모진의 행태를 겨냥, 등돌린 민심 현장의 목소리가 金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여기에다 민주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추경안이 처리되지 못한 데서 나타난 내부의 기강 해이는 전례가 드물고, 林장관 해임건의안에 대한 DJP 공조는 삐걱거리고 있다. 나사 풀린 국정에다 권력 내부의 한심한 대립은 金대통령의 레임덕(권력 누수)을 재촉할 악재들이다.

이런 내우외환의 지경까지 온 데는 金대통령의 국정.권력 운영 스타일에도 상당한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여권 내부에 만만치 않다. 지난 5월 말 안동수(安東洙)법무부 장관의 졸속 임명 사태 속에 민주당 내 소장파 의원들이 일으킨 정풍(整風)의 핵심 요구 사항은 당정 개편에다 국정의 면모를 새롭게 바꾸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金대통령은 국정 전체의 틀에서 쇄신책을 마련하기보다 사태를 나눠 분리 대처했다. 그러다 보니 단발성 쇄신책이 되고 미봉책, 땜질식 국정 운영이란 평판을 들었고, 지난번 8.15 경축사는 여론의 흐름과 거리가 멀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金대통령은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당정 핵심부의 개편을 포함해 국정을 새롭게 추스를 수 있는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국정 실무의 중추인 청와대와 내각.민주당의 3각 협조 관계는 헝클어져 있다. 팀워크가 무너진 상태에서 어떻게 경제난을 극복하고, 민심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겠는가. 레임덕의 그림자는 그런 틈새를 파고드는 것이다.

그런 속에서 林장관 해임건의안 문제도 대북 채널의 개인 의존도에서 벗어나 국정 전반을 새롭게 짜는 큰 그림에서 풀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지금의 국정 난맥상을 해소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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