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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가로막는 한 정권 두 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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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금 우리나라의 경제를 두고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얼마 전 국책연구소인 한국개발원(KDI)은 올해 4분기 경제전망을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도저히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외환위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같이 국민 대부분이 오늘 당장 어떻게 살 것인가를 놓고 가슴을 태우는데 유독 정부와 여당은 개혁의 깃발을 휘두르고 지난 일들을 들춰내기에 골몰하고 있다.

과거 정권 때에 이른바 '땡! 전(全) 뉴스'로 온갖 지탄을 받았던 방송사들이 이제는 '개혁의 완장'을 팔에 두른 채 그 일에 앞장서고 있다. 마치 뭐 묻은 사람이 뭐 나무라듯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는 덮어버린 채 현 정부에 비판적인 일부 언론과 사회 원로들을 조리돌리고 있다. 이 정권의 핵심들은 마치 자신들이 무슨 십자군이나 되는 양 우리 사회를 선과 악으로 나누고 반대 세력은 애초부터 있어서는 안 되었을 존재로 몰아치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잠시 동안만 집권을 위탁받은 사람들이 힘 있음을 빙자해 역사를 자기들의 잣대로 마구 재단하고 반대편을 탄압하며 무력화시키려 든다면 이는 '정신적 킬링필드'일 뿐이다. 지금 급한 것은 뇌사 일보 직전의 경제를 살리는 일이다.

최근 정부.여당은 내년 후반부에 10조원 규모의 '한국판 뉴딜 정책'을 쓰겠다고 발표했다. 10조원의 돈을 4대 연.기금 등에서 갹출해 도로건설과 복지시설 건립 등에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기요,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에 불과하다. 우선 10조원이라면 우리 정부 1년 예산의 12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과연 과거 미국의 뉴딜정책과 같은 획기적인 경기부양의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급하다고 연.기금의 돈을 마치 정부 예산과 같이 쓰겠다는 발상이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고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시장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기업 중 연간 순이익만 1조원을 넘기는 기업이 열 군데나 된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에만 3조원 이상의 순이익을 남기고 있다. 그렇다면 해답은 너무도 분명해진다.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경제운용의 핵심 주체인 기업이 경영하고 투자하고자 하는 의욕을 갖도록 하는 것이 첫째다. 둘째는 국민이 우리 경제의 미래를 밝게 보고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정부가 앞장서 기업과 노동자가 열심히 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자면 지금과 같이 한 정권에서 두 가지의 목소리가 나와서는 안 된다. 기업이 곧 국가라고 기업들을 달래다가도, '4대 개혁 입법'을 반드시 통과시켜 본격적으로 개혁에 나서겠다는 말을 기업가들이 들었을 때 그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겠는가. 사립학교법이 통과되면 폐교하겠다고 사학재단들이 결사반대하고, 공립학교 교장선생님들마저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도 '사학법' 통과를 고집한다. 이러한 좌파적 분위기 속에서 누가 자기 재산을 털어 투자하려 들겠는가.

박철언 전 정무장관·한반도통일문화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