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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의 우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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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자유무역과 보호주의는 누구에게 득이 되고, 누구에게 실이 되는가. 대입 논술이나 경제학과 저학년 시험에 나올 법한 물음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제임스 잉그램은 이를 다음과 같은 우화로 재미있게 풀어냈다.

때는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 보호주의 여론이 한창이던 시절. 주인공은 농산물을 쏟아부으면 자동차를 뱉어내는 경천동지의 기계를 발명한 기업이다. 이 회사는 해변에 공장을 세우고 생산에 들어갔다. 물론 공장 내부는 극비였다.

이곳에서 나온 차는 다른 회사 것보다 값이 싸고 질도 좋았다. 소비자들은 열광했고 이 회사의 시장점유율은 쑥쑥 높아졌다. 이곳에 납품하는 농민들도 신이 났다. 우울한 쪽은 기존의 자동차 회사들. 새로운 경쟁자 때문에 가격인하와 함께 구조조정과 신기술 개발에 내몰렸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신문기자가 이 회사에 불만을 품은 근로자에게서 제보를 받는다. 공장에 잠입한 기자는 생산현장을 취재해 회사의 비밀을 폭로한다.

공장 내부는 텅 비어 있고 바닷가엔 대형 선착장이 있었다. 한쪽에선 해외로 내갈 농산물을 선적하고, 또 다른 한쪽에선 외국서 도착한 배에서 차를 하역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농산물로 차를 만든 게 아니라 농산물을 수출하는 대신 차를 수입해 팔았던 것이다. 여론의 질타를 받자 공장은 문을 닫고 만다. 다른 회사들은 쾌재를 불렀다. 그 후 다시 자동차 값은 오르고 농민들은 판로를 잃었다.

이 우화는 보호주의의 폐해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보호주의는 자기 나라에서 가장 효율적인 공장을 없애는 것이나 같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는 사실도 빼놓지 않는다.

원래 이 얘기는 미국 자동차 업계의 보호주의 성향을 꼬집은 것이다. 하지만 품목을 바꿔 대입하면 우리에게도 적용되지 않을까. 예컨대 자동차를 원료로 값싸고 질 좋은 쌀을 만드는 공장 얘기라면 어떨까. 이를 없애면 국내에서 가장 효율적인 논을 갈아엎는 셈이 된다.

정부는 쌀값이 내려도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도록 쌀 농가에 소득을 보장해주기로 했다. 개방의 고통을 덜어줄 진통제인 셈이다. 그럼 남은 일은 무엇일까. 우화 속 '쌀 공장'의 폐쇄가 아니라 뼈를 깎는 구조조정일 것이다.

남윤호 패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