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는 토크쇼] 미국 교육제도 모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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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신간 『미국 교육과 아메리칸 커피』는 미국의 초.중.고 교육현장을 가감없이 보여주는데 성공한 리얼한 보고서다.

그런 점에서 간혹 등장해온 피상적인 교육처방의 목소리와는 선명하게 다르다. 미국 교육의 장단점을 사회적.역사적 맥락과 함께 조목조목 지적한 저자는 특히 현장 경험이 거의 없는 한국의 교육 전문가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저자 심미혜(미 인디애나대 교육학)교수는 미국 유학 전 한국의 한 중학교에서 6년간 역사를 가르친 경험이 있다. 미국 공교육 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교사 지망생과 현직 교사들을 가르치며 세계화교육센터 소장직도 맡고 있다.

잠시 귀국한 심교수와 함께 이 땅의 붕괴된 교육현장을 염두에 두며 머리를 맞댄 이는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박유희 회장이다.

대학생과 고3 자녀를 둔 박회장은 최근 논란이 되는 '자립형 사립고' 도입을 찬성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두 사람은 지금이야말로 교육의 기초를 바로잡아야 할 때라는 점에 공감했다.

사회〓최근 우리 사회 핫 이슈로 등장한 '자립형 사립고' 도입 문제부터 얘기해 보자.

심미혜〓한국 교육의 현실은 '자립형 사립고' 하나만을 놓고 말할 단계가 아니다. 이것이 내가 책을 쓴 목적이기도 하다. 질문에 대답부터 한다면 나는 자립형 사립고나 대학 기여 입학 같은 것에 반대한다. 빈부 차이에 의한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미국은 해소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 비슷한 제도가 있다고 한국에도 만들자는 발상은 안일하다. '아메리칸 커피' 라는 상징적 제목을 단 것도 그 때문이다.

사회〓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심미혜〓얼마전 한국에 잠시 들렀을 때 한 커피숍에서 아메리칸 커피를 시켰다. 그런데 크림 좀 달라고 했더니 종업원이 아메리칸 커피는 원래 블랙으로 마시는 거라며 면박을 준다. 그때 느낀 점이 한국 교육의 문제와도 대비된다. 미국에서 커피 마시는 방법은 한마디로 자기 맘대로다. 미국에서도 논란이 많아 쓰이지 않는 이론이 한국에선 또 다른 아메리칸 커피로 둔갑하고 있다.

사회〓과도한 사교육비 문제, 그 돈이면 선진국에서 훨씬 질 높은 교육을 시키겠다며 조기 유학 혹은 교육 이민을 떠나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평준화 교육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박유희〓그렇다. 우리 단체가 자립형 사립고 도입을 찬성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 제도를 통해 대안 교육 등 다양한 교육적 욕구에 대한 돌파구를 열어보자는 것이다.

사회〓이 문제에 대한 TV 등의 활발한 토론과정은 돋보였다. 그런데 토론을 지켜보면 이념논쟁으로 흘러버리고 마는 아쉬움이 있다.

박유희〓의무교육이나 국민보통교육의 필연적 논리에 비해 자립형 사립고와 같은 특수형태는 토론과정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인정한다. 그러나 경쟁이라는 말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문제다. 과장해서 말하면 '국민 정서법' 이 헌법을 능가하는 현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심미혜〓(웃음)재미있는 표현인데,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배울 것은 제대로 된 경쟁 논리의 도입이다. 그것은 노력을 담보로 한 경쟁이다. 열심히 노력해 능력이 뛰어난 학생과 교사가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것은 정당하다. 그래서 내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국어.영어.수학 등에 한해 '수준별 반편성' 을 하는 제도다.

박유희〓수준별 반편성 도입에 찬성한다. 학생들의 능력차이를 무시한 현재와 같은 평등은 이미 불평등이다. 하지만 이것도 교사와 학부모 등의 반대에 부닥쳐 실시되기 힘들 것이다.

심미혜〓우열반이 되어선 안된다. 궁극적으로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교육 기회를 시간과 공간을 달리해 부여하자는 것이다. 물론 국어.영어.수학이 달리는 학생은 방과 후 등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교사들의 시간이 더 많이 투입돼야 할 것이다. 과외가 필요없게 만들어야 한다.

사회〓심교수의 책은 한마디로 교육의 기초를 다지자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국과 비교해서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심미혜〓교육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는 교육부 책임자.연구기관의 전문가.교수들이 가장 큰 문제다. 그들의 조령모개식 탁상 행정이 한국의 교육을 망치고 있다.

사회〓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그렇게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심미혜〓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나 '이론 중심 행정과 교사양성' 을 고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이뤄질 수 없다는 판단이다.

사회〓예를 든다면.

심미혜〓현재 교육관련 연구원이나 교수 그리고 행정 당국자 가운데 실제 초.중.고에서 교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조사해 보라. 미국에선 교육관련 교수가 되려면 적어도 3년 이상 교사 경험이 있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한국의 교육 관련 세미나 자료를 보면 순 업적 중심인데다 아는 사람끼리 나눠먹기며 심지어 10년전 자료를 반복하는 모습엔 말문이 막힌다.

박유희〓한국에선 오히려 우리 초.중.고 교사들이 개인적으로 모여 연구하고 수업 부교재 등을 만드는 경우가 최근 보인다. 그러나 제도적 지원이 안돼 실제 현장에서 반영되지는 않는다. 또 학부모의 왜곡된 교육열도 큰 문제다.

심미혜〓또 하나 지적할 것은 미국은 법을 잘 바꾸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번 정한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을 교육현장에서 끊임없이 세뇌시킨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박유희〓나라의 몸집이 커서 잘 움직이지 않는 면도 있지 않을까.

심미혜〓그렇지 않다. 교육법만 해도 인디애나주에서 올 가을부터 시행예정인 '주 수준 평가' 는 1989년부터 논의를 해 오다 12년이 지난 올 7월에야 법이 통과됐다.

사회〓미국의 이른바 '열린 교육' 의 단점을 지적했는데.

심미혜〓주입식을 배제하고 창의성을 강조하는 열린 교육을 하다보니 누구나 알아야 할 기본 지식의 결여가 문제로 지적됐다. 교사마저 기본 지식이 부족하다. 그래서 최근에 '창의성도 기본 지식의 기반 위에서 나온다' 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창의성과 주입식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회〓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심교수가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심미혜〓먼저 (법이 아닌 교육적 차원에서) 과외를 폐지하고 수준별 반편성을 실시하겠다. 초등학교의 경우엔 인성교육 중심이어야 한다. 수업 시작전 1시간은 꼭 책을 읽도록 하겠다. 이것을 미국에선 '기초 교육(Basic Education)' 이라 부른다. 교사양성은 철저히 어떻게 교재를 개발해 가르칠 것인가하는 구체적 사례 중심으로 하겠다. 교육전문가는 교사 경험을 3년 이상 쌓아야 한다.

사회.정리=배영대 기자

사진=김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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