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드럼 스틱 놓고 골프 클럽 잡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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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나 어떡해, 너 갑자기 가버리면' .

유신 독재 막바지 시절인 1970년대 말. 최루탄 내음이 가득했던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목청높여 부르던 노래. 금지곡이 많아 맘놓고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몇 곡 되지 않던 그 시절 '나 어떡해' 는 말 그대로 국민가요였다.

77년 제1회 대학가요제에서 서울대농대 재학생들로 구성된 그룹 '샌드페블스' 가 불러 대상을 수상하면서 알려진 이 노래는 특히 가슴이 답답하던 시절 터질듯 두들겨대는 인상적인 드럼 연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 샌드페블스에서 깨끗한 외모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열정적으로 드럼을 두들겨 보컬 못지 않은 인기를 모으던 드러머 김영국(45)씨. 그가 지금 드럼 스틱 대신 골프 클럽을 잡고 있다. 그는 '나 어떡해' 로 단번에 스타가 됐지만 대학을 졸업한 뒤 평범한 회사원이 됐다.

대기업 광고 담당에서 외국계 스포츠용품 회사의 브랜드 마케팅 부장까지 지낸 그는 지난해 탁월한 영업 실력을 인정받아 세계적인 골프용품 제조업체 테일러메이드의 초대 한국 지사장이 됐다.

필드에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그였지만 골프사업을 하고 난 뒤 독학으로 골프 이론에서부터 골프용품 시장에 대한 분석까지 단기간에 마스터하는 놀라운 저력을 보였다.

골프도 틈틈이 배워 현재는 업계 사람들과 어울려 부끄럽지 않을 만한 실력을 쌓았다고 한다.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영업실적보다 직원들간의 커뮤니케이션. 이 회사 김재연 과장은 "왕년의 뮤지션답게 지사장님이 자유로운 분위기를 중시하기 때문에 거리낌없는 토론이 자주 벌어져 참신한 아이디어를 찾는다" 고 말했다.

김사장은 오는 10월 샌드페블스 창설 30주년 기념 공연을 위해 요즘도 틈나는 대로 드럼을 두들긴다.

"70년대 대학가에서 내 노래를 흥얼거리던 팬들이 이제는 모두 고객" 이라는 김사장은 " '나 어떡해' 못지 않은 히트작으로 팬들에 보답하겠다" 는 포부를 밝혔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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