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단 귀국 현장] 공항 '보·혁시위'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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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8.15 평양 민족통일대축전 참가 남측 대표단이 돌아온 21일 김포공항은 오후 내내 거친 긴장상태였다.

이들을 규탄하러 온 재향군인회.자유총연맹 등 보수우익 단체 회원 6백여명과 환영하기 위해 나온 한총련 등 통일연대 회원 3백여명 간에는 거친 욕설 속에 일부 폭력사태도 벌어졌다.

◇ 양측 대립.소동=오전 11시쯤부터 김포공항 2청사에 모여든 재향군인회 회원 등은 '좌경 불순세력에게 방북을 승인한 정부 당국은 국민 앞에 사죄하라' '김정일의 하수인들아, 이 땅에 왜 오는가' 등의 플래카드 10여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북한의 꼭두각시 통일연대는 정체를 밝혀라" "국가 망신시킨 자들, 국민의 이름으로 규탄한다" 는 등의 구호를 외쳤으며, 오후 3시15분 방북단이 공항청사를 빠져나오기 시작하자 경찰의 저지선 위로 계란 30여개를 던졌다.

반면 한총련 대학생 등 통일연대측은 '어서오십시오, 수고하셨습니다. 통일에 한걸음 다가갔습니다' 는 플래카드와 꽃다발.한반도기 등을 든 채 '우리의 소원' 을 부르며 방북단을 환영했다.

경찰은 이날 양측 단체의 충돌을 막기 위해 26개 중대 3천여명을 공항에 배치해 네겹으로 '인(人)의 장막' 을 쳤다.

그러나 재향군인회.참전전우회 회원 등이 기습적으로 저지선을 뚫고 통일연대 등을 향해 돌진하는가 하면 통일연대 회원의 한반도기를 빼앗고 한총련 여학생의 머리채를 잡는 등 충돌이 빚어졌다.

◇ 연행 과정=오후 2시15분쯤 대표단을 태운 여객기 두대가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당국은 입국심사대 중 두개 통로를 열어 방북단을 통과시키고, 수사대상자 16명은 별도로 경찰이 에워싼 뒤 연행했다.

가장 먼저 연행된 천영세 변호사는 법무부 직원이 "긴급체포하겠다" 고 하자 "나는 변호사" 라며 반발했다. 이에 법무부 직원은 "알고 있다. 나는 법무부 직원" 이라고 해 잠시 승강이를 벌였다. '만경대 방명록 파문' 을 일으킨 강정구 교수는 오후 3시30분쯤 마지막으로 연행됐다.

姜교수는 연행 직전 입국심사대 앞에서 준비한 해명원고를 읽었다. 그는 "결코 김주석 가문이나 주체사상을 찬양할 의사가 없고, 순간적 발상을 방명록에 기재한 것" 이라며 "만경대 정신이라는 개념의 확인도 없이 왜곡.과장 보도하는 것은 올바른 언론의 자세가 아니다" 고 말했다.

이들의 연행에 대표단의 통일연대 일부 회원들은 "우리만 빠져 나갈 수 없다" 며 한동안 항의하기도 했다.

대표단 중 통일연대 회원과 한총련 학생 등 1백70여명은 오후 6시쯤 연세대에 모여 대표단 인사 연행 규탄 집회를 열고 "통일운동 탄압중지"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어 연행자들이 조사를 받고 있는 국정원과 서울경찰청 보안분실을 항의 방문했다.

◇ 대표단 회견=대표단은 공항 도착 직후 기자회견에서 성명을 통해 "우리의 평양체류 기간 발생한 사건들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민간교류의 단절로 이어지는 빌미가 돼서는 안된다" 고 주장했다.

방북단 대표인 김종수 신부 등은 회견에서 "문제가 된 3대 기념탑 행사 참관은 북측의 잇따른 요청을 받고 회의를 하던 중 일부가 빠져나가 참가한 것" 이라며 이로 인해 북측과 마찰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창우.홍주연.강병철.남궁욱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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