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파트 라말라 청사에 안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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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영원히 잠들었다. 그의 유해는 12일 오후(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 자치정부 청사(무카타) 구역 내에 마련된 묘지에 안장됐다.

안장식이 거행된 무카타의 주변 거리에는 이날 10만여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몰려들었다. 주민들은 아라파트의 유해가 카이로에서 헬기편으로 도착하자 울부짖으면서 통곡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관이라도 만져보자"며 결사적으로 달려들었다. 하늘로 쏘아대는 요란한 총소리 속에 주민과 군인들이 직접 손으로 아라파트 유해가 담긴 관을 천천히 장지로 옮겼다.

관이 이동식 콘크리트 무덤에 안장되는 순간 "아버지(아라파트), 아버지, 우리의 심장에 묻히소서"라며 관으로 손길을 내미는 젊은이들의 부르짖음이 특별묘역을 가득 메웠다. 다른 사람들은 '일랄 쿠드스(예루살렘으로), 일랄 쿠드스'를 외쳐대며 멀지않아 아라파트의 무덤이 '팔레스타인 독립국의 수도' 예루살렘의 '아크사 성역'으로 옮겨질 수 있기를 희망했다.

앞서 이날 오전 11시 이집트 카이로 국제공항 인근 헬리오폴리스 지역의 알갈라 군인클럽 내 이슬람사원에서 아라파트의 장례식이 30분 동안 거행됐다.

"아라파트 수반은 용기와 정직성을 갖고 팔레스타인 지위 수호자로서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이슬람 수니파 최고 권위기관인 알아즈하르의 성직자 셰이크 무하마드 탄타위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향해 놓여진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유해 앞에서 기도했다. 그러고는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뒤 '알라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네 번 부르면서 살아서 행한 모든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아라파트의 부인 수하 여사와 딸 자흐와, 그리고 팔레스타인 고위 관리들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라파트의 유해는 프랑스를 떠나 전날 오후 10시40분쯤 카이로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장례준비를 위해 알갈라 군병원 영안실로 옮겨졌다. 아라파트 수반의 시신이 담긴 목관은 팔레스타인 기에 덮인 여섯 마리 말이 끄는 포차에 실려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화려한 꽃과 카펫으로 장식된 장례식 텐트에서 팔레스타인 지도부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전 세계 50여개국 200여명의 조문단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사의를 접수했다. 요르단.예멘.시리아.인도네시아 등 아랍.이슬람권의 정상들이 상당수 모습을 보였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국가들은 외무장관을 파견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과 껄끄러운 관계인 미국은 중동특사를 지낸 윌리엄 번스 국무부 차관보가 조문단을 대표했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우리 정부 조문대표로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장에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이집트인이 멀리서나마 '라일라하일랄라(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를 외치면서 아라파트의 명복을 빌었다.

이스라엘은 예상대로 조문단을 파견하지 않는 대신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완전봉쇄하면서 준전시 상태인 D급 경계경보를 내렸다. D급은 지난해 이라크 전쟁 이후 처음이다.

장례식이 끝난 후 아라파트의 유해는 다시 마차에 실려 알갈라 클럽 뒤편에 수백m 지점에 위치한 알마자 공군비행장으로 옮겨졌다. 유해는 C-130 허큘리스 수송기에 실려 45분 뒤 이집트 북부 알아리쉬에 도착했고, 수반의 관은 그곳에서 헬리콥터에 옮겨져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청사 내에 마련된 특별묘역으로 이동됐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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