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젊은이들의 이미지문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젊은이들 사이에 영상 또는 이미지에 대한 관심이 가히 폭발적일 정도이다 보니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요즘 젊은이들은 영화나 비디오에만 홀려서 점점 책을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책을 안읽으니 올바른 사고능력을 익히지 못하고 감각적 쾌락에만 탐닉한다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소리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어린아이들이 만화책 보는 것을 마치 나쁜 짓이라도 하는 것처럼 제지하려 했던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했던 이야기,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

*** 형상.색채.감각의 범람

이런 걱정들을 하는 어른들은 온갖 이미지에 풍요롭게 둘러싸여 있는 요즘 젊은 세대에 비해 어찌 보면 불쌍한 세대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먹는 것,가리는 것 이외에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있었던가. 또 책, 책 하지만 과연 읽을 만한 책들이 지금처럼 많이 있었던가.

따지고 보면 우리는 이미지에 관한 한 그다지 풍부한 체험을 해보지 못한 조상들의 후예다. 심하게 말하자면 다양한 형상.색채.분위기를 누리기엔 너무 못살았고 여유가 없었고 문자만을 숭상하며, 권위 있는 몇몇 경전을 풀이한 말씀 위주로 살아왔던 민족이다. 이미지가 희소했고 또 이미지를 두려워하던 사회, 물건의 아름다움을 즐기면 뜻을 잃는다고 하여 이를 애써 기피하며 주자학을 맹신하던 나라의 백성이다. 서양은 제쳐놓는다 하더라도 우선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에 비교해서 말이다.

과거에 훌륭한 미술품이나 미술가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있었다 하더라도 희소했고 아낄 줄 몰랐기 때문에 오늘까지 전해지는 게 변변치 않다. 그것도 특수층의 전유물이었고 문자와 직접 연관된 서화 이외의 분야는 그다지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일부 도자기나 그밖에 금붙이 따위로 재료 자체가 값 나가는 것을 제외하면. 워낙 없는 데다가 그나마 전란으로 파괴되고 약탈당하고 자연 파손되어도 돌보는 사람이 없어 그대로 버려졌으니 마치 나무가 없어 헐벗은 산야와도 같은 것이 과거의 시각환경, 미술을 포함한 이미지 환경이 아니었나 하는 과장된 상상까지 하게 된다.

어쨌든 빈약했던 시각문화의 전통과는 달리 오늘날은 이미지가 과잉으로 넘치는 시대다. 문자텍스트에 바탕을 둔 과거 양반계층의 서화골동취미와 오늘날 대중사회의 이미지 소비현상은 여러가지 면에서 다르다. 가치판단의 측면에서 보자면 분명 큰 차이가 있겠지만 그것도 보는 관점과 기준에 달렸다. 다각도로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이미지의 과잉과 범람, 일상생활에서의 시각의 전반적 지배라는 현상이 곧바로 무지와 몽매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유의해야 한다. 과거의 문자 중심의 사고가 곧바로 깨달음과 지혜로 통하는 것이 아니듯이. 오히려 대처해야 할 문제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

젊은이들은 이미지를 몸으로 살고 이를 통해 느끼고 생각한다. 이미지에서 시작하여 이미지를 빌미로 인생과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 이미지 해독능력이 관건

이미지는 그들의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지나치게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이미지가 아무런 소리나 말이 없이 시각적으로만 감각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이미지는 말이나 글을 동반한다. 인터넷을 보면 곧 확인할 수 있듯이 시각 텍스트는 필연적으로 언어 텍스트를 끌어들이게 마련이다. 그 양자 사이에서 복잡 미묘한 대화가 벌어진다.

젊은이들은 그 대화를 알아들으려 노력하고 거기에 그들 나름의 이야기를 보태려 한다. 범람하는 이미지의 파도 속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 이미지의 복합적 언어를 해독하는 능력을 갖춰 그것을 통해 사고하고 표현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다.

새로운 이미지 문화에 대한 러다이트적 태도는 과거 이미지가 결핍된 문자텍스트 시대에 대한 향수일 뿐 현재의 문제해결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세대가 바뀜에 따라 문화 전반의 틀과 결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崔 旻(전주국제영화제조직위원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