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 칼럼] 문제를 주의로 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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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19~20년은 중국 현대사의 분수령이다. 19년에 5.4운동이 일어나고 이듬해 중국공산당이 결성되는 질풍노도의 시대다.

당시 5.4운동을 주도했던 사상적 주역이 후스(胡適)였고 공산당 결성을 주도한 게 리다차오(李大釗)다.

둘다 베이징대 교수였고 당시 중국 지식인사회를 주도했던 거물들이다. 이들 간에 중국 공산당 역사에 남을 '문제와 주의(主義)' 논쟁이 벌어진다. 진보와 보수,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갈등과 반목을 빚던 이념과잉의 지식풍토에서 먼저 문제를 제기한 게 후스였다.

***낡은 지식풍토 못벗어

후스는 '더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더 적게 주의를 말하자(多硏究些問題 少談些主義)' 는 슬로건을 내건다. 지식인의 정력을 비현실적이고 귀에만 즐거운 주의 논쟁에 쏟을 게 아니라 실제적 사회문제 연구에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자동차와 인력거는 수송수단으로서 비교가 되질 않는다.

그런데도 자동차 연구보다 인력거꾼의 노임 문제에만 매달려 있다는 게 그의 비유다. 이에 리다자오는, 사회문제 해결은 다수민중의 공동운동에 달려 있어 문제와 주의를 분리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민중 개인의 문제를 사회 전체의 문제로 연관 짓기 위해선 그들의 자각심을 일깨울 필요성이 시급하다.

주의란 민중에게 사회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해주기 위한 이상과 방향을 제공하는 틀이라는 주장이다. 이 논쟁은 중국 지식인 사회를 양분하면서 한해가 가도록 계속됐지만 결론은 나지 않은 채 서로 제 갈길을 가고 만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개혁과 반개혁, 진보와 보수라는 패싸움이 시작된 지 꽤 오래고 각계 원로와 지성인들은 줄이어 적과 동지의 이분법적 대결과 반목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다고 경고하고 있다. 21세기 초입에서 어떻게 우리사회는 1세기 전 중국사회의 '문제와 주의' 논쟁을 닮아가면서 반세기 전 좌우대립의 양상을 띠는 낡은 지식 풍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나는 여기에 '함정' 과 '오해' 라는 두 요인이 있다고 본다. 모두 자신도 모르게 '문제와 주의' 라는 함정에 빠져 있으면서 그것이 함정인 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오해' 란 평등주의를 주장하면 진보고 이를 반대하면 보수로 모는 잘못된 지적 풍토를 말한다. 우리 시대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미래지향적이냐 과거 회귀적이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낡은 좌우 이념논쟁의 틀 속에서 평등주의만 주장하면 진보라고 생각하고 또 이를 용인하는 오해가 이념갈등과 혼란을 부추기는 구체적 요인이라고 본다.

진보든 보수든, 좌든 우든, 여든 야든 후스의 주장처럼 문제 해결의 접근이 아니라 이념과잉의 접근 때문에 문제는 풀리지 않고 갈등만 조성된다고 본다. 또 미래지향적이질 않고 과거회귀적 잣대로 문제를 재단하기 때문에 갈등 반목이 증폭된다.

사립학교 재단의 전횡이 문제라면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데, 학교란 공적 존재이니 교사가 장악해야 한다는 인민주의로 접근한다. 약화(藥禍)가 문제라면 약의 오남용을 막을 장치를 강구하기 앞서 의약분업과 국민개(皆)보험이란 평등주의로 접근한다.

소유와 경영, 경영과 편집의 제도적 분리장치를 모색하고 또 그런 방향으로 가는데도 불구하고 보수언론의 개혁을 위해선 소유상한제 도입을 들고나온다. 문제로 접근하지 않고 주의로 바람을 일으킨다.

*** 정책접근도 이념과잉

자본주의사회에서도 저소득층 보호를 위한 사회안전망 정책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런 정책만 나오면 야당은 '사회주의적' 이라고 반대하며 색깔논쟁을 벌인다.

남북간 군사대결을 완화하고 화해협력의 남북시대를 열자면 햇볕정책 이외의 해법이 별로 없다. 이 정책을 지지하면 통일.진보세력이고 반대하면 반통일.보수반동이다. 대북정책의 공론화와 제도화에 문제제기를 하면 왜 왔다갔다 하는 회색분자냐고 질타한다. 서로가 낡은 장부를 뒤적이며 적과 동지를 양분할 뿐이지 문제해결은 뒷전이다.

교육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라면 미래지향적 제도를 다양하게 도입해야 한다. 의료재정이 수십조원씩 펑크가 나면 최소한은 의료재정으로, 나머지는 사보험 도입으로 해결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미래지향적 문제해결 아닌 과거회귀적 평등주의만 외치다간 언제 침몰할지 모를 위기의 나날을 우리가 보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도 어찌하여 과거회귀적 평등주의를 스스로 진보라 자처하고 이를 반대하는 미래지향적 접근방식을 수구반동으로 몰 수 있는가. 사회문제를 과거회귀적 이념과 주의로는 결코 풀 수 없다.

권영빈 <본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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