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양고전 독서토론회'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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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대구 영남대병원의 간호사인 정복희(37 ·여)씨는 3년째 매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두꺼운 책을 들고 집을 나선다.

독서토론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얼마전부터는 남편도 회원이 되었고 아이들까지 동행한다.

정씨는 “남편이 독서 모임에 참가하면서 가족들 간에 대화가 많아졌고 아이들도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며 “우리 부부가 독서를 하는 사이 아이들은 자연에서 맘껏 뛰어놀 수 있어 일요일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정씨가 참여하는 독서토론모임의 이름은 ‘파이데이아(Paideia)’.그리스어로 ‘인류가 가져야 할 교양교육’이란 뜻이다.

모임에 어울리게 토론장도 산골의 폐교(廢校)다.

대구 도심에서 동남쪽으로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보면 옥수수 ·깨 ·복숭아 밭이 펼쳐진 전형적인 시골마을 동구 평광동이 나타난다.

여기에 위치한 2층짜리 미니학교인 평광초등학교에서 모임이 펼쳐진다.회원들은 20∼40대 직장인과 대학원생 등 모두 20여명.

일요일인 지난 12일 오후.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회원들은 책상에 둘러 앉았다.

“나는 이 부분에서 큰 감명을 받았어요.”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네요.”

의견이 분분해지자 독서 지도자인 신득렬(57 ·계명대 교육학과)교수가 나섰다.신교수의 자상한 설명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토론은 두시간 이상 계속됐다.

이들이 읽고 있는 책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헤로도토스의 ‘역사’,투기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플라톤의 ‘변명 ’‘파이돈’‘향연’ 등 서양고전들이다.

모임이 시작된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책의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인지 소수만 지속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신교수가 파이데이아를 만든 것은 1991년.중등교육이 입시중심으로 바뀐 데다 대학교육마저 전문화함으로써 ‘교양’이란 말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는 판단에서다.

신교수는 “공통의 대화 소재가 사라지면서 사람들이 저급한 대중문화의 포로가 돼 버렸다”며 “이를 극복해 보자는 것이 독서토론 모임을 만든 계기”라고 말했다.

내용이 어려운 책들인 만큼 회원들은 모임 전 반드시 50∼70쪽을 읽고 토론 소재를 스스로 정해야 한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김수희(37 ·여 ·어린이도서관 운영)씨는 “독서의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고 있다”며 “독서 삼매경에 빠져 더위도 잊고 산다”며 즐거워했다.

회원들은 “인류가 남긴 위대한 고전을 통해 대화와 인간성을 복원하는 것이 목표”라며 “좋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문의 053-983-6519.

대구=홍권삼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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