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이즈미 총리 참배 단념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8.15 '종전(終戰)의 날' 을 이틀 앞두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가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로 '상당히 고민 중' 이라고 한다.

그동안 공언해온 대로 15일 참배를 강행할 것인지, 아니면 15일을 피해 다른 날 참배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지엽적인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문제의 본질은 참배 시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배 여부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참배를 단념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정치인으로서 고이즈미 총리 자신은 물론이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될 기로에 서 있는 일본을 위해서도 현명한 선택이라고 본다.

"과거사 문제로 주변국과 관계가 악화되면 일본의 강점인 소프트 파워도 약해진다" 면서 "A급 전범들이 합사(合祀)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일본에 커다란 손해" 라고 지적한 조셉 나이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장의 충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는 고이즈미 총리의 공약이니 참배 포기는 어려운 선택일 것이다. 외국의 압력 때문에 자신의 신념과 소신을 포기하는 인상을 주는 정치적 손실도 단기적으로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군국주의의 직접적 피해 당사자인 한국이나 중국이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것은 내정간섭이 아니며 부당한 압력도 아니다. 지금 일본에 필요한 지도자는 대중적 인기보다 국가 장래를 생각하는 지도자다. 그 누구보다 고이즈미 총리에게서 그런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기에 우리는 진심으로 그에게 충고하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역대 지도자들은 과거에 대한 참회의 진의를 의심케 하는 그 어떤 행동도 자제했다. 참배를 단행한 뒤 주변국을 배려한 담화를 발표한다든가, 사절단을 보내 해명하는 방안도 검토된다지만 다 부질없는 일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단념하고, 그 이유를 당당하게 일본 국민에게 밝히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