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경기부양 세감면·규제완화로 가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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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와 여당이 경기 부양책을 공식 거론하고 나섰다. 미국의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이대로 두었다가는 국내 경기가 장기 침체에 빠져들어 성장의 동력마저 꺾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경기 부양 방안으로는 경쟁력이 있는 대기업에 대해 부채비율 2백% 제한을 풀어 투자를 유도하고 세금을 깎아줌으로써 내수를 진작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일부 문제가 있는 제도를 고치고,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면서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장치를 만드는 한편 대우자동차.현대투신 등 문제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서두르자는 방향이다.

재정을 동원한 적극적인 경기 부양에는 정부와 여당 모두 신중한 입장이며, 현재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예산의 조기 집행을 적극 실행하기로 했다.

◇ 규제 완화=민주당 강운태(姜雲太)제2정책조정위원장은 수익성이 있는 기업에 대해 부채비율 2백% 제한을 풀자고 주장했다. 증시가 어려운 판에 부채비율을 2백%로 제한하면 기업의 자금조달 길이 막혀 투자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부채비율 2백%는 정.재계 합의에 따라 채권은행들이 64개 주채무 계열사와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맺으면서 적용한 것" 이라며 "재무구조 개선 작업이 진행 중인 기업은 대상이 될 수 없고 목표를 달성한 기업에 대한 부채비율 적용 완화 문제는 더 논의해야 한다" 고 말했다.

최고위원 간담회에서 제기되지는 않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30대 그룹을 원용한 출자총액 제한 등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도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

◇ 재정 지출 확대=정부.여당 모두 국채를 발행해 돈을 푸는 일에는 신중한 입장이다. 정부는 이미 5조1천억원의 추경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며, 올해 쓰는 것으로 잡힌 예산을 제대로 쓰면 10조원을 푸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처럼 예산을 쓰면 올해 통합재정 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1% 미만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채 발행 등을 통해 재정 적자를 1%포인트 늘리면 5조원 정도의 돈을 추가로 풀 수 있다. 하지만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돌아올 공적자금의 원리금 상환으로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또 지나치게 돈을 풀 경우 내년으로 예정된 정치일정과 행사(지자체장 선거.월드컵.아시안게임.대통령 선거) 때 풀릴 돈과 합쳐져 물가 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하고 있다.

◇ 세금 감면=민주당은 신용카드 사용이 늘어나 중소 상인들의 세 부담이 늘어난 만큼 세금을 깎아 주는 방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정부도 세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지만 당장의 경기 부양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벌어진 소득 격차를 줄이는 방안으로 중산.서민층의 세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중소 상인의 세 부담을 줄여주는 것도 같은 측면에서 검토 대상이다. 얼마를 깎을지는 오는 9월 지난해 소득신고가 집계된 뒤 결정할 예정이다.

봉급생활자의 세금을 얼마나 깎아줄지에 대해서는 정부도 아직 방향을 정하지 못했다. 세율을 낮추는 것은 세수(稅收)에 큰 영향을 주고, 공제 혜택을 더 주는 것은 세제가 복잡해지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기획예산처에서 내년 세출 예산이 나오면 이를 토대로 오는 20일께 구체적인 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다.

송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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