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윈도] 대통령은 휴가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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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4일 백악관을 떠나 텍사스주 크로퍼드에 있는 자신의 목장에서 31일간의 여름휴가에 들어갔다.

영화 '자이언트' 에 나오는 목장 같은 이곳은 부시가 2년 전에 자신이 구단주로 있던 프로야구 텍사스 레인저스의 주식을 팔아 산 것이다. 부시의 휴가 동안 이 목장은 핵미사일 통제장치를 비롯한 주요 통신시설이 갖춰져 비상 여름백악관이 된다.

한달 동안 워싱턴 정가는 진공상태가 된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딕 체니 부통령도 와이오밍주 잭슨홀에 있는 개인 별장에서 한달 간의 휴가를 즐길 예정이다. 상.하원은 이날 1개월의 휴회를 시작했다. 대부분 노동절(9월 3일)이 지나야 워싱턴으로 돌아온다.

미 대통령 중에 여름휴가를 한달 가까이나 보낸 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벌레로 소문난 빌 클린턴은 2주 정도로 참았지만 로널드 레이건은 28일, 리처드 닉슨은 30일 정도를 아낌없이 썼다.

그래도 부시 대통령의 31일 휴가는 화제가 되고 있다. 대통령이 쉬어도 너무 쉬는 것 아니냐는 일부 시선을 의식해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일하는 휴가(working vacation)' 라고 표현했다. 부시가 크로퍼드 목장을 근거지로 해 여러 주의 행사에 참석하고 중요한 문제에 관해 결정을 내리기도 할 것이라는 것이다.

부시는 꽤 상쾌한 마음으로 여름휴가를 맞았다. 이틀 전 워싱턴 포스트와 ABC방송의 공동 여론조사에서 부시 개인에 대해서는 63%, 대통령직 수행에 대해서는 59%의 지지율이 나왔다.

클린턴은 취임 첫 해인 1993년 8월 직무수행 지지율이 45%로 거부율 51%보다 훨씬 낮았다.

부시는 여러 협정을 파기해 다른 나라에서는 '깡패' 라는 소리도 듣지만 국내에서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21세기의 제국' 미국은 지금 국내외로 특별한 난제가 없다. 경기침체라지만 일반 국민은 별 고통이 없다. 그들은 곧 세금환급 수표를 받게 된다. 깜짝 놀랄 테러도 없고 미사일 방어도 일단은 순항이다. 부시의 한달 휴가는 이런 미국의 징표일는지 모른다.

워싱턴 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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