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충무로 성공시스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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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구조적 불황에 내부스캔들이 겹쳐 '죽을 쑤는' 출판 장르와 달리 영화동네는 거듭 큰 걸음을 내딛고 있다.

올 상반기 시장 점유율 39%라는 수치가 말해주듯 영화 기상도의 '쾌청' 그 자체다.

자국(自國) 영상 콘텐츠가 이토록 강세를 보이는 현상은 영화강국 인도를 빼고는 한국이 독보적이다. 차제에 영화의 성공사례를 출판 장르의 빈곤함과 비교연구를 해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이후 충무로의 성공요인을 복기(復棋)하면서 출판의 구조적 허약체질을 점검해 보자.

한국영화 전성기의 기폭제 중 하나가 93년 로맨틱 코미디 '결혼 이야기' 가 꼽힌다. 젊은층을 끌어들이는 장르 다양화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물론 그 이전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 1' 과 '서편제' 가 대성공을 거두며 그런 가능성을 구축했다.

가능성이란, 잘 만들어진 기획상품은 시장에서 승리를 거둔다는 교훈이다.

두 영화의 경우 '깨끗한 한국적 액션물' '판소리 영화' 라는 컨셉트에 충실했다.

이후 기념비적 액션물 '쉬리' 를 낳기까지 충무로는 팬터지( '은행나무 침대' ).코미디( '투캅스' ) 등 다양한 장르영화에 이미 노하우를 갖추고 있었다.

'공동경비구역 JSA' 와 '친구' 로 이어지는 대박행렬은 우연이 아닌 셈이다. 그러면 무엇이 "어?

우리 영화도 볼만하네" 하는 인식을 만들어줬는가?

답은 생산과 유통 두 부문에서 찾아진다. 우선은 생산역량 쪽. 충무로에 기획과 제작역량이 있는 인적 자원이 모여들었고, 이것을 효과적인 제작시스템으로 뒷바침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때 유통도 정비했다.

서울극장을 효시로 영화 한편만 덜렁 올리는 단일관에서 멀티플렉스로 발빠른 탈바꿈을 했음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성공요인이 출판동네에는 극도로 취약하다. 아니 없다. 우선 대중시대 진입에 걸맞은 '신개념 활자상품' 을 제작해내는 기획 마인드부터가 없었다.

즉 제작과 마케팅 단계에서 시장 공략이란 과제에 제대로 접근하는 훈련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엘리트용 지식상품 개발에 충실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시장과 지식사회 변화를 읽는 기획의 눈이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인적 자원이 극도로 취약한 것이 문제다. 제조업 중 가장 열악한 오늘의 출판상황은 시대착오의 엄숙주의에 빠져 시대변화에 눈감아온 출판계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SF.추리.스릴러 등 시장 전체를 키울 장르문학의 개발 자체가 언감생심이었다. 물론 부분적으로 활성화된 팬터지의 경우는 다소 예외에 속한다. 그렇다면 이번 사재기 파동에서 문제가 된 『열한번째 사과나무』의 경우를 보자.

그 책은 멜로장르를 개발한 기획상품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파동에서 기획 마인드 자체에 흠집을 낸다면, 출판시장 축소는 물론 '먹물시장' 의 앞날은 밝지 않다.

어쨌거나 당장의 문제는 인적 자원 확보와 기획 시스템의 구축이다. 지금 에디터 연봉 2천만원 전후로는 우수 인력이 몰려들 턱이 없다.

왜 출판인들은 출판금고 등을 활용한 편집자 재교육과 유학 사업에 눈을 감고 있는가?

출판 몇년을 익히면 소자본 독립을 준비해야 하는 핵분열 구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유통 정비도 결국은 출판계 몫이 아닌가. 세월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문방구 어음을 끊는 유통구조에 내출혈을 하는 사정은 딱하기까지 하다.

다음 회에서는 장르문학 개발과 관련해 구체적인 사례연구를 통해 출판 활성화 방안을 다시 짚어보겠다.

조우석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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