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4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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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45. 가야산에 올라

성철스님은 가끔씩 상좌를 데리고 가야산 봉우리에 오르길 좋아했다. 슬슬 햇살이 따가워지기 시작하던 초여름 어느날 나에게도 등산에 동행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남산 제일봉에 갔다 오자. "

산악인들에겐 매화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산이다. 운동화를 갈아 신고 모자를 들고 나오니 성철스님이 선글라스를 끼고 앞장 서 걷기 시작했다. 백련암의 젊은 스님 몇이 따라 나섰다. 큰스님이 남산 제일봉을 오르고자 나선 것은 해인사의 최고 어른으로 팔만대장경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가야산 여러 봉우리 중에서도 남산 제일봉은 해인사와 인연이 깊다. 매년 음력 5월5일 단오가 되면 해인사 선방 스님들은 몇 개의 소금 단지를 들고 남산 제일봉에 오른다. 그리고 산 정상에 단지를 묻고 내려온다. 그 오래된 관행은 대장경을 지키자는 뜻에서 시작됐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해인사는 애장왕 3년에 창건됐다. 무려 1천2백여년 전 신라시대 이래 해인사는 수많은 곡절을 겪어왔다.

해인사가 대가람으로서의 제모습을 갖춘 것은 조선 성종 15년이다. 대규모 중창불사를 회향하는 법회가 그해 9월에 열렸고, 그때 비로소 팔만대장경 판전(板殿.대장경을 보관하는 서고)이 법보전과 수다라전으로 형태를 잡았다.

그러나 해인사는 그 후 7차례의 화재로 거의 폐사될 위기에 처했다. 그 위기 속의 해인사를 오늘에 되살린 사람은 19세기 초 경상감사를 지낸 김노경이란 인물이다.

내가 막 행자를 졸업한 1973년, 지관스님이 해인사 주지로 있을 때다. 대웅전에 비가 새 기와를 들어내고 지붕 개.보수 공사를 했는데, 대들보에서 상량문이 발견됐다. 놀랍게도 추사 김정희가 36세 때 쓴 것이었다. 추사는 바로 김노경의 아들이다.

화재가 잦은 해인사에 거의 2백년 가까이 큰 불이 없었다는 얘기다. 김노경이 중창하던 무렵 풍수에 따라 처방을 했기 때문이다. 해인사에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법당을 중건할 당시 화재가 잦으니까 스님들이 법당 방향을 정남향에서 서쪽으로 약간 틀었다고 한다. 풍수에 따르면 해인사 법당이 남산 제일봉을 바라보고 있어 화기(火氣)를 이기지 못해 불이 자주 난다는 것이다.

또 법당 축대와 해인사 곳곳에 돌 홈을 파 단오날 거기에 소금물을 붓고 남산 제일봉에 소금 단지를 묻으면 화마(火魔)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매년 단오가 되면 선방 스님들이 그 책무를 맡아 소금 단지를 지고 남산 제일봉을 올라가 묻고 오는 것이다.

평소 그런 전설 같은 얘기를 들으며 궁금하던 터에 큰스님이 남산 제일봉을 가보자 하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막상 걸어보니 꽤 거리가 멀었다. 백련암을 내려가 신부락을 지나 남산 제일봉을 오르는데 5~6㎞는 넉넉히 됨직한 거리였다.

젊은 상좌는 헉헉거리는데, 큰스님은 잘도 걸었다. 삿갓 쓰고 지팡이 짚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었다. 큰스님이 평생 전국의 선방을 돌아다니며 정진한 얘기들이 많았다. 처음 가야산에서 시작, 부산의 금정산을 거쳐 북한의 금강산과 묘향산,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희양산.조계산.지리산.팔공산 등을 두루 다닌 얘기다.

마침내 남산 제일봉에 오르자 동서남북으로 시야가 탁 트이며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큰스님이 입에 두 손을 가져다가는 "야 - 호" 하고 우렁차게 소리질렀다.

"야 - 호" "야 - 호"

메아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큰스님이 주변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말했다.

"소금 단지 한번 찾아보거라. "

우리들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땅을 휘적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안돼 여기 저기서 소금 단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잘 묻혀 있습니다" 라는 보고를 받은 큰스님은 큰절을 내려다보시며 가야산, 해인사, 그리고 대장경 사랑을 풀어놓았다.

"다른 산들은 곧 싫증이 나는데 가야산은 싫증이 안난단 말이야. 싫증이 나지 않으니 떠날 일이 없지. 그리고 6백년 동안 나라가 어지럽고 난리가 나고 온갖 풍상이 몰아쳤는데…, 특히 임진왜란이나 육이오(한국전쟁)를 이겨내고 오늘까지 저렇게 잘 모셔져 있는 팔만대장경판을 후대에 잘 전해 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 아니겠나?

여기 묻힌 소금 단지도 그렇지만 대중 스님들이 항상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야제. 그게 중요한 것 아니겠나?

이제 내가 왔다가면 다음에는 주지 보고 한번 왔다가라 해야 되겠제?"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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