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욱 칼럼] '위헌' 넘나드는 선거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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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역 선거구 투표로 비례대표 의원까지 뽑는 현행 의원 선거방식이 위헌이란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선거법의 대폭 손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우선 선거방식이 문제된 비례대표제를 존속시키느냐, 아예 없애느냐가 문제다. 제1야당인 한나라당은 비례대표제의 폐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헌법 제41조 3항은 '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비례대표제를 꼭 둬야 한다는 강제규정으로 보긴 어려우나 우리 헌법이 국회의원 선거제도에서 비례대표적 요소를 전제로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 권역별 비례는 비현실적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선거구제도는 한 선거구에서 최고 득표자 한명을 뽑는 소선거구제와 전국 또는 큰 단위로 정당의 득표에 비례해 의원을 배분.선출하는 대선거구-비례대표제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이 두 제도 중 하나, 혹은 이 둘을 혼합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미국.영국 등의 하원의원 지역구 선거가 소선거구제이고, 이탈리아.스위스.오스트리아.벨기에.덴마크.네덜란드.노르웨이.핀란드 등이 비례-대선거구제다. 독일과 일본은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한 제도를 택하고 있다.

소선거구제도는 미국과 영국에서처럼 양대 정당제도의 건전한 발전을 촉진하는 제도이긴 하나 사표(死票)를 많이 내 국민의 의사를 왜곡하는 결정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비례대표제는 국민의 의사를 고루 반영하는 제도이긴 하나 군소정당의 난립으로 정치불안을 초래한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유신.5공 시절 우리나라와 1990년대 중반 이전 일본이 채택했던 1구 2~6인의 중선거구제도는 다수대표제도 아니고, 정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를 철저히 반영하는 비례대표제도 아닌 정략적인 선거구제도였다. 우리의 경우는 1, 2당의 나눠먹기식 제도란 비난을 받았고, 일본에선 파벌정치.당내투쟁.금권정치 풍토의 원흉으로 지목됐었다.

이렇게 전반적인 소선거구제 도입, 비례대표-대선거구제 전환, 중선거구제 복귀에는 모두 심각한 문제가 따른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대안은 지금처럼 소선거구제에 비례대표를 가미한 제도를 유지하면서 비례대표 선거 방식만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 경우 전국구에 대한 별도의 투표없는 1인1투표제가 위헌으로 판정된 만큼 비례대표 후보에 대해 별도로 투표하는 1인2투표제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지난번 선거법 개정 때도 비례대표 의원을 전국 단위로 뽑느냐, 몇개의 권역별로 뽑느냐가 한때 쟁점이 됐었다.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한 독일과 일본의 경우는 주(州)별, 또는 11개 권역별로 정당명부에 투표하는 비례대표제를 운용하고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특정 정당후보의 지역 싹쓸이를 막는 장점이 있으나 전체 의원 중 비례대표의 비율이 클 때 효과가 있는 제도다. 독일은 전체 연방의회 의원의 2분의1, 일본은 중의원 의원의 5분의2를 비례대표로 뽑는다.

우리나라처럼 의원의 6분의1 정도를 비례대표로 배정하는 경우엔 권역별 투표는 소선거구에 중선거구를 합친 꼴밖에 안된다.

소선거구제에서 빚어지는 과도한 지역의 사표 발생으로 인한 정당별 지지도의 왜곡을 보완하고 직능대표적 요소를 보충한다는 비례대표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 국민의 평등권을 제한하는 소수당 배분 배제 조항을 없애더라도 권역별 비례대표제로는 진보-혁신정당의 국회 진출 길은 또 다시 봉쇄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려면 먼저 비례대표 의원의 비율을 전체 의원의 3분의1 이상으로 대폭 늘리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 상향식 공천 제도화해야

그리고 선거제도 개선 과정에서 무엇보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민주적 공천의 제도화와 선거구 인구 불균형의 해소다. 이번 헌재의 결정문 속에는 현행 비례대표 공천 방식도 위헌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지금처럼 돈이나 받고 당 지도부에서 낙점하는 식의 비민주적 공천은 위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단 비례대표 공천뿐 아니라 지역구 공천도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이 기조가 되도록 제도화되지 않고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의 발전은 기약할 수 없다.

또한 4배까지 편차가 나 있는 선거구의 인구 불균형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평등권 위반일 뿐 아니라 농촌정책의 왜곡, 지역정당구도심화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선거법 개정 과정에서는 비례대표 문제뿐 아니라 이렇게 위헌적.비민주적인 요소의 개선에도 보다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성병욱 <중앙일보 고문.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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